시계가 고장날 지라도(장편 소설)
14 : 온정의 시야
" 선생님이 널 나무라려고 부른 것은 절대 아니란다. 일반적인 독후감의 형식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정말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해. 휘림이는 글쓰기에 큰 재능이 있는 것 같구나."
" 감사합니다."
아이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서 수줍은 듯한 태도로 대답했다.
" 다만, 보통 이 책을 네 나이에는 읽지 않는 책이라서 말이야."
" 서점에서 집었을 때 나이 제한 같은 것은 따로 없었는데, 혹시 제가 책을 잘못 골랐나요?"
순간 아차 싶었다. 겁을 주려던건 아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내성적인 아이인 모양이다.
" 아니아니, 네가 읽어서는 안될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네 나이에 읽기에 많이 우울한 내용인 것 같긴 하지만, 네가 쓴 글을 보면 다행히 네가 그렇게 우울함을 느낀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어."
왠지 아이 앞에서 말실수를 한 것만 같아서 어떻게든 수습하느라고 진땀이 났다.
" 저는 정말로 그가 날아올랐다고 생각해요."
휘림은 눈에 힘을 주고 힘이 실린 어조로 대답했다. 마냥 여린 아이인가 싶다가도 의외로 외강내유적인 면이 있다.
나는 사실 예전에 그걸 읽었을 때 주인공이 당연히 건물에서 떨어지며 끝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삼학년 때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읽은 것인지라, 당시에는 소설을 읽으면서 마냥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었던 탓도 있었으리라. 문득 교육자로서 조금 생각이 굳어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아이의 시선은 다르구나. 대화가 좀 재밌게 흘러간다는 생각도 들었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그런데... 혹시 이 책을 고른 이유가 따로 있니?"
정말 궁금했던 부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말을 마치고 가만히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 음, 저 스스로도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
" 차분히 생각해보아도 괜찮아, 시간은 많으니까."
" 서점에 가서 아동용 책 코너를 보신 적이 있나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 듯 한데, 하지만 끝까지 들어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 응, 있지. 선생님도 서점 좋아한단다. 아동용 책이라면 꽤 반짝반짝하고 밝은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 저도 매대를 스쳐 지나가면서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 뭔가 특이한게 있었니?"
" 우리 아이 코딩으로 한글 배우기, 어린이를 위한 문해력 수업, 초등학생을 위한 하루 한장 비문학 독해..."
" 아아, 그래 요즘은 그런 책이 많지."
비문학이라는 단어가 초등학생에게까지 내려갔다니, 세상이 말세다. 왜, 초등학생을 위한 미분과 적분도 내지 그래.
나는 공연히 지엽적인 부분에 꽂혀 화를 내는 버릇이 있었다.
" 뭔가 목적이 너무 분명한 책은 읽기 싫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불분명한 책을 골랐다고 하면 조금 설명이 될까요?"
" 그래, 그럴 때가 있지."
스스로 사유하는 걸 즐기는 모양이다. 더러 반항적이라는 말도 듣고 자라겠는데. 하지만 커서 훌륭한 작가가 될 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는 꼭 작가가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간에 꽤 훌륭한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 좋은 책을 골랐구나. 평소에도 책 좋아하니?"
" 글을 쓰는건 좋아하는데 책은 잘 읽지 않았던 것 같아요."
" 앞으로도 많이 읽어보렴. 네 나이에 읽는 이야기들은 마음에 오래 남으니까, 좋은 이야기들로 많이 많이 읽어보렴."
" 고맙습니다, 그럴게요."
" 이제 선생님이 궁금했던 건 다 질문한 것 같은데, 혹시 휘림이도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 있니?"
" 선생님도 책을 좋아하시나요?"
" 음, 어린 시절에는 꽤 좋아했던 것 같은데, 부끄럽지만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만화나 게임을 즐겼던 것 같아. 선생님이 휘림이한테 한 수 배워야겠구나."
대답을 하면서 오늘은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야겠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 너무 늦기 전에 조심히 돌아가렴. 이야기 들려줘서 고마워,"
14 : 온정의 시야
아이야, 너는 너의 날개를 무엇으로 여기고 있니?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 너는 좇는구나.
날자, 날자. 날자.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날아 보자꾸나.
아주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날아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