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고장날 지라도(장편 소설)
18 : 휘림의 시야
애매하게 눈이 녹아 질척대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박눈이 펑펑 나려서 저게 언제 다 녹을런지 싶었는데 시간이 부단히도 빠르게 흘러간다.
아아, 2월은 기이한 달이라. 새롭다기에 정월은 이미 어젯녘이고 익숙하다기에는 낯선 그러한 시절. 무언가 일어날 듯 하지만 기실 잃어가기만 하는 날들... 그래서 2월은 기이하다.
나는 졸업식을 갓 마쳤다. 중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대략 며칠이 남았는지 어림짐작해보았다. 아마 한 삼 주 남짓일까? 꼭 삼 주-
그렇다면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애매한 기간을 조금은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다. 애써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아 대관절 나는 무엇을-?
' 앞으로도 많이 읽어보렴. 네 나이에 읽는 이야기들은 마음에 오래 남으니까, 좋은 이야기들로 많이 많이 읽어보렴.'
그 자체로도 마음에 아로 새겨지리 만치 좋은 이야기임이 틀림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상의 날개를 골랐던 것은 필연한 우연이었다. 그 책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필연이고, 내가 그것을 집어든 것은 우연이었다.
필연과 우연이 마치 직물의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듯 복잡하게 얽히는 그런 순간순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좋은 이야기들을 골라야 하는 것일까.
'...많이 많이 읽어보렴.'
얻고 싶은 결과가 있다면 시행을 늘리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어덴가엘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여야만 한다. 그래, 지금 바로.
지면을 탕탕 박차며 튀어나갔다. 바닥이 진동하는 감각이 발바닥에서 다리를 타고 솟구쳤다. 격해지는 박동이 혈관을 조였다.
그것이 경동맥까지 전해지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였다. 머리는 뜨겁고도 맑았다.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광화문행 버스를 잡아 올라탔다. 교보, 교보를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