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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재 Jun 19. 2021

단 여덟 글자가 적힌 고소장

 경찰은 검찰과는 달리 구치소에 구속 수감 중인 사건 관계자를 경찰서로 불러서 수사할 수 없다. 검사는 필요하면 검찰청에 사건 관계자를 데려와서 수사할 수 있지만 경찰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직접 사건 관계자를 접견하러 가야만 한다. 그 사건 관계자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 있어도 말이다(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왜 검사는 되고 우리는 안 되는 것인지?, 경찰청 차원에서 해결해줘야 할 것 같은데 왜 이런 생각이 없는지 모르겠다). 


 구치소에 가서 사건 관계자의 말을 직접 들으면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김이 빠진다. 사건 관계자가 제출한 서류만 보아도 억지 주장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현주건조물방화 등 여러 전과가 있던 피의자는 이번에는 폭행 혐의로 구속되어 경찰서 유치장에 며칠을 있었다. 그 피의자는 검찰청으로 송치되는 그 날에 제3자를 고소하면서 "세금포탈, 불법영업", 단 8글자가 적힌 고소장을 경찰서에 제출하였다. 난 개인적으로 이런 고소장은 접수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증거가 일체 첨부되어 있지 않은 막무가내의 고소는 혐의가 없는 사람을 피의자로 입건되게 만들기 때문에 더 큰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수감되면서 구치소에서 고소를 남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구치소에 접견을 하러 가기가 싫었지만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구치소에 갈 수 밖에 없었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그 자는 피고소인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여 피고소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달라고 하였으며, 최면수사 및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하면 피고소인을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는 김상중씨에게 연락하면 수사가 쉬워질  것이라고도 하였다. 


 경찰이 파란 박스를 들고 다니며 압수수색을 하고, 중요 피의자를 검거하는 모습을 보고 동경했던 경험이 있던 나로서는 종종 위와 같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허탈감을 느낀다. 구속되어 있으면 심심하니까 고소장이나 작성하고, 구치소에 있으면 무료하니까 경찰이나 만나서 대화나 해볼까 하면서 고소장을 제출하는 사람들. 뻔히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접수하는 고소장임을 알면서도 사건을 반려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수사기관. 


 언론에서는 경찰,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편파 및 억압수사를 한다는 이미지를 씌우고 있지만 실제로 수사기관이 처리하는 많은 사건은 수사기관이 사건 관계자에게 끌려다니는 사건이다. 사건 관계자에게 예의는 갖추지만 정당한 권위도 있는 수사기관의 구성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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