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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재 Feb 04. 2022

경찰서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을 중심으로

 일선 경찰서에서 휴직기간을 포함해서 대략 2년 6개월을 근무했다. 매년 100건 이상의 기록을 검토하고 검찰에 서류를 넘겼으니 약 300건 정도의 기록을 검토하지 않았나 싶다. 그 중에서는 어려운 사건도 있었고, 그냥 기록만 보고도 각하해도 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제 언제 다시 일선 수사 업무에 복귀할지 모르지만 실무자로서 경찰서에서 생활했던 이 시기는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민원인들)

- 일단 제일 기억에 남는 민원인은 나를 칭찬해준 건물주 할머니, 할아버지이다. 피의자로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셨고, 계속 의사소통을 하면서 조사를 했고, 결국엔 유리한 처분을 받으셨기에 나로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런 민원인들만 있으면 경찰서 수사관 생활이 정말 쉽고 행복할 것 같다. 


- 예배방해죄로 고소되어 왔던 할머니들도 기억에 남는다. 경찰서에 처음 와본다면서 나한테 잘 봐달라면서 봉투를 건네주셨던 할머니들. 아직도 이런 분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던 분들이다. 예배방해죄라는 죄목이 형법에 있는지도 몰랐더 나에게 예배방해죄의 존재를 알려준 분들이기에 기억에 남는다. 안타깝게도 구성요건을 충족한 행위를 하셨기에 벌금을 내신 것으로 아는데 이제는 조용히 예배를 보시고 계시겠지...


- 수사관기피신청을 했던 전과자도 기억에 남는다. 강력 범죄로 20대부터 60대까지 교도소에 들락날락 거린 사람이었다. 방검복만 입고 본인을 따라오면 마약사범들을 잡게 해주겠다는 말도 안되는 제안을 했던 사람이 내가 강압수사를 했다면서 수사관기피신청을 했을 때 정말 분해서 잠을 못잤다. 사회적 약자이기에 국가가 공짜로 임플란트를 해준다고 자랑했던 사람. 강력범죄를 저지르며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은 사람에게 국가가 공짜로 임플란트를 해줘야 하나? 내가 본 제일 나쁜 민원인이었다. 


- 테크노마트를 갖고 있는 고소인도 기억에 남는다. 본인 딸이 의대 교수이고, 손녀가 매우 똑똑하다면서 나한테 육아 방법을 알려주었다. 신문지 위에서 아기를 재우면 아이가 신문 냄새에 익숙해지고 그 때문에 글 읽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게 된다는. 사서삼경을 큰 소리로 읽어주면 고급 문장을 말하게 된다는 조언이었다. 와이프한테 해보자고 했다가 미친 소리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공하는 사람은 윗사람에게 20%의 시간을 쓴다면 아랫사람에게 80%의 시간을 쓴다면서 나한테 아랫사람에게 잘해주라고 했다. 나중에 간부가 되면 소중하게 기억해 둘 말인듯 싶다. 


- 돈 관계로 경찰서를 찾아온 많은 민원인들은 매우 화가 난 상태이다. 그 화를 경찰관에게 푼다. 나는 경찰이 그들의 화를 들어줄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건 관계자도 아닌데 왜 돈을 받아달라면서 경찰에게 화를 내는지. 경찰은 돈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다. 사건을 해결하면서 돈까지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찰 수사를 채권추심 행위처럼 여기는 민원인들의 행태에 실망도 많이 했다. 나한테 화를 냈던 그들은 과연 돈을 받았는지 궁금해진다. 


(기억에 남는 윗사람들)

- 수사에 있어서 팀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법리를 알아야 함은 물론이고 경험을 토대로 실제로 수사를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 조사특채로 들어온 우리 팀장님은 그런 전형이었다. 이런 팀장님을 경찰 생활 초기에 만난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간접적으로 겪은 다른 팀장님들 중에서 이런 능력과 경험을 갖고 있는 팀장님을 보지는 못했다. 경찰 수사가 발전하려면 내가 모신 팀장님 같은 팀장이 많아져야 하는데 우리 경찰의 현실은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 아쉽게도 닮고 싶은 수사과장을 경찰서에서는 보지 못했다. 다 옛날 경찰들이었다. 사건 기록을 같이 검토함면서 방향을 설정해주면서 사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과장을 모시지 못했다는 점이 경찰서 생활에서 제일 아쉬운 점이다. 


- 처음 발령받았을 때 서장님은 퇴직하시는 경찰관을 위해 파티를 열고 노래도 직접 불러주셨다. 직원들과 식당에서 밥도 같이 드셨다. 인품이 매우 훌륭하셨던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국 경무관으로 승진하셨다. 마지막으로 모셨던 서장님도 직원들에게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셨는데 아마도 곧 승진하지 않으실지? 그에 반해 존재를 모를 정도로 조용히 계시다가 떠난 서장님도 계셨는데 그 분도 승진하셨다. 이때는 승진의 기준이 무엇인지 심히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경찰서 생활)

 첫 경찰 생활을 내가 속한 경찰서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출근하기 싫었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렇다고 출근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출근을 하면 이야기를 나눌 동료가 있고, 사건에 대해 조언해 줄 선배가 있었기에 두렵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한가지 두려운 것은 이런 동료들을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이 동료들이 최고라고 한다면 그들이 없는 경찰생활을 행복하게 할 자신이 없다. 앞으로 시작할 국수본 생활은 아마도 경찰서 생활보다 조금은 더 어렵고 까다롭지 않을까 싶다. 행동거지를 성실히 하면서 맡은 일에는 빵꾸내지 않으면서 동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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