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한참 찌질이었던 시절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잘나가면 너무 부러웠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 내가 모르는 사람이 성공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시절. 지금 돌이켜보면 매우 부끄럽다. 그 찌질함의 절정이었던 시절이 석사과정 밟을 때였다. 내가 제일 좋은 학교로 유학을 갔었어야 했고, 내가 교수님들에게 제일 많은 사랑을 받았어야 했다. 그래서 동료들이 다 경쟁자로 보였다. 매우 불행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 시절을 반추하고 싶지 않다. 지도 교수님을 제외하고 대학원 때 사겼던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은 이유는 불행했던 내 과거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결혼도 하고, 애도 기르면서 지금의 나는 많이 편안해졌다. 사람인 이상, 내가 아는 사람이 잘되면 한 5초 정도 배가 아프다. 그리고 끝이다. 오히려 내가 아는 사람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다만 내 동기들보다, 내 지인들보다 한발자국 정도만 늦게 갔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같이 유학을 준비했던 친구가 고려대학교에 임용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 무덤덤했다. 그리고 나는 나 스스로를 축하해주었다. 그 소식이 무덤덤 해졌을만큼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데, 그 시절에는 왜 그게 별거였는지. 세월의 흐름과 육아는 확실히 사람을 성장시키는 요소인 것 같다.
대학원 시절은 생각하고 싶지 않기에 그나마 나 스스로의 삶에 집중했던 로스쿨 시절부터 소중했던 동기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간략하게 소개해보고 싶다. 동기들이 잘나가면 나도 저절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발자국 정도 늦게라도 쫓아갔으면 좋겠다. 세상엔 정말 지성과 인품을 갖춘 사람들이 많이 있다.
고려대학교 로스쿨은 정원이 120명인 만큼 10명씩 나누어 12개의 조로 학생들을 나눈다. 나는 7조였던 것 같다. 7조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학생이 나였다. 그래서 동생들이랑 엄청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끔 모임에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생들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는다. 그 중 연세대학교 수학과와 법학과를 이중전공한 여동생이 있는데, 그녀는 졸업하자마자 개업해서 고군분투 했고 그 결과 지금은 법무법인 대범을 설립하여 안정적으로 로펌을 운영하고 있다. 개업 초기에 만났을 때는 조금 힘들어 보이긴 했는데 지금은 상대적으로 편안해보이고 부동산 전문 로펌을 운영하면서 부동산 전문가로 성장하고 있다. 존경하는 동생 중 한명이다.
두 명의 동생들은 삼성전자 법무팀에서 근무 중이다. 대형로펌에서 근무한 후, 삼성전자로 이직해서 승진도 했다고 한다. 로펌과 다르게 사내변호사들은 회사에서 메인이 아니기 때문에 승진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굴지의 회사에서 승진까지 한 동기들인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리고 또 한명의 동생은 대형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했는데, 몇년 전에는 올해의 라이징 스타(?)에 선정되어 법률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이 있다. 얘는 외모도 매우 출중한데, 내가 결혼식 할 때 사진기사님이 이 친구의 외모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는지 이 친구를 원샷으로 사진을 찍으셨고, 그 사진이 내 결혼앨범에 실려있을 정도이다. 나는 한번도 M&A를 경험해보질 못했는데, 회사의 인수합병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모습이 전문가스럽다.
역시 대형로펌에서 근무하다가 유학을 갔다온 후 개업한 친구가 있다. 서초동 변호사 시장이 어렵다고 많이 들었는데 이 친구는 개업한 후에도 꾸준히 사건을 수임하는 듯하다. 로스쿨의 많은 졸업생들이 M&A 전문가를 꿈꿀 때 송무변호사로서 대형로펌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케이스이기에 힘든 서초동 생활에서도 연착륙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종종 경찰수사 경험을 물어보곤 하는데 나의 짧은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연락이 뜸하지만 로스쿨에서 나한테 공부를 가르쳐줬던 거의 띠동갑 수준의 여동생이 한명 있었다. 그녀는 졸업 후 사내변으로 들어갔다가 퇴사 후 경제직렬으로 한국은행 시험을 쳐서 한은에 입사한 후 헌법재판소 연구관으로 근무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나는 헌법재판소에 두번이나 지원했다가 두번 다 서류 탈락한 경험이 있는데 역시 나와는 다른 무언가를 갖고 있는 그녀이기에 헌재에서의 연구관 생활도 쉽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로스쿨 생활은 나에게 한없는 겸손을 가르쳐 주었다. 학부와 대학원 때 아무것도 가진게 없으면서도 잘난 줄 알았던 내가 정말 날고 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생존하려고 노력하면서 겸손을 갖춘 실력이 무엇인지 배웠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아는 로스쿨 동기들이 더 승승장구 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공부만 잘한다고 잘난척하면 언젠가는 무리에서 도태되게 되어있는데 우리 조 동기들은 그런 부류는 없기 때문에 각자 맡은 자리에서 공동체를 위한 역할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