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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03. 2016

여행, 그곳에서 나의 옷가짐

 청춘여행소, 여섯 번째 이야기



현상

여행 짐 싸기에 본연 돌입하게 되면 옷장을 열어놓고 어떤 옷을 챙겨갈지를 고민한다. 

사진 찍을 것을 감안해 머릿속으로 상의, 하의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어떤 옷과도 어울릴 수 있는 마법의 옷을 찾는다. 결국 캐리어에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짐도 당연 옷, 때문에 여행 중에 짐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가장 먼저 버릴까 말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도 옷. 


오랜 여행으로 빨래가 힘들어질 때 샤워 후에도 찝찝하게 더러운 옷을 입어야 한다는 불쾌감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사진 속 매번 색 다른 풍경을 뒤로하고 늘 같은 옷인 자신의 모습이 불만일 때가 있던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에 옷이라는 것이 여행과 어떠한 관계일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본질

재작년쯤이었던가. KBS ‘나는 남자다’의 ‘역마살 남녀 편’을 보고 공감을 많이 했었다. 특히 여행지에서 한국인 인지를 알아보는 법 1위가 ‘풀 메이크업과 패션 피플’이었다는 것에 폭풍공감을 했다. 아름다운 여행지에 걸맞는 예쁜 옷을 입고, 평소에는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누리는 것은 의미가 있고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내가 아닌 타인에게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다운 모습, 본연의 나의 모습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닌, 내가 바라고 꿈꿔온 모습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그럴 경우 현실에 돌아와서도 괴리감을 느끼며 여행에서의 나의 모습을 한없이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마치 신데렐라 같은 동화 속 이야기 같았으니까. 그렇게 내가 주인 되지 않은 여행은 현실 세계로 돌아왔을 때 한 여름밤의 꿈으로 전락해버리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관점

신기한 것은 우리는 그동안 그 의식이 다른 사람이 나를 향해 바라보는 데 있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그러나 여행지에서는 오롯이 내가 이방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본다. 내가 타인을 바라보며 생각하게 되고, 또 그 생각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적용되는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된 의식이 타인을 거쳐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것. 그 중심에 '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중에서


 아침 일찍 베네치아를 구경하러 나가던 어느 골목길, 금발머리의 여자가 내 앞에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커리어 우먼처럼 당당한 걸음을 만들어내던 그녀의 다리의 검은 스타킹은 올이 몇 군데 나가 살이 조금씩 비쳤고, 옷과 어울리지 않는 백 팩의 한쪽 끈은 실밥이 풀려 곧 끊어질 것처럼 간당간당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신기하게도 그녀가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올이 나간 스타킹도 하나의 패션인가? 하고 생각되던 순간이었다. (나였다면 올이 나간 스타킹을 발견하는 순간 솟구치는 짜증과 속상함에 오늘 일이 잘 안 풀릴 거라는 걱정덩어리를 궁시렁 씹어대며 당장 벗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 여자가 뒤 따라오는 나를 의식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녀에게 중요한 의식이었다면 어땠을까?

신기하게도 여행을 하다 보면 다른 나라에서 여행 온 사람들의 옷이 평이하다 못해 낡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특히 기차로 이동하는 경우엔 더 확인하기가 쉬운데, 티셔츠, 청바지, 오래된 운동화 차림의 누군가가 책을 읽고 있다면 거의 확실하다. 유심히 살펴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면 주로 젊은 배낭여행객들이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그들의 여행 패션 철학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단 하나, ‘편안함’이었다.

편안함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옷이라는 것이 나의 여행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로 족하다는 것, 오히려 방해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2011년 6월)

아이디어

 여행을 준비할 때, 특히 옷을 고르는 상황에서 ‘무엇을 입을까?’ 보다 ‘이 옷이 내가 여행의 특정한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느낄 때 방해가 될까?’하는 질문을 먼저 해보는 것은 어떨까?


 산티아고를 순례길을 마치고 스페인 마드리드로 넘어온 날, 유럽은 겨울 세일을 맞아 그야말로 쇼핑 대란이었다. 하고픈 일을 잘 마쳤다는 스스로가 기특해 셀프 토닥으로 합리화하며 그 대란에 기분 좋게 휩쓸리기로 했다. 평상시에 잘 입지도 않는 치마를 사고, 관심도 없던 화장품도 샀다. 호스텔 화장실에서 한껏 멋을 내고 나니 호스텔을 나갈 때부터 기분이 묘했다. 런웨이가 내 눈앞에 펼쳐진 느낌이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여행이 무르익어 갈 때쯤 날 기분 좋게 했던 옷이 자꾸만 여행의 걸림돌이 되는 듯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앉고 싶을 때 아무 데나 앉을 수도, 달리고 싶을 때 달릴 수도, 오르고 싶은 데를 오를 수가 없었다.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도 치마가 뒤집힐까, 조신하게 보이지 못할까 신경 쓰기 바빴다. 그날로 난 숙소 한구석에 처박아둔 운동화와 산티아고 순례길를 내도록 함께했던 옷가지들을 다시 꺼냈다.


 그제야 다시 나의 여행이 시작되는 듯했다. 비싸고 유명한 메이커의 옷들보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나를 닮아가는 옷, 내 여행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옷이 끌리는 건 나다움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방법임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나누고픈 여행 이야기나 성장여행을 위한 아이디어, 조언이 있으시다면

청춘여행소 dreamingtraveler2016@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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