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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Sep 06. 2022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봤나요

요즘 아이들, 그러니까 내 기준에서 초등학생 중. 고등학생들이 노는 법을 그나마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친구를 사귀더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친구들과 시내로 거하게 놀러 가는 일이 생겼다.

지금 물가를 생각해서 지갑에 2,3만 원 넣어주면

포토 OO이나, 하루 OO 같은 셀프 사진 샵에서 한 장에 4,5천 원 하는 네 컷 사진을 찍고 프랜차이즈 분식집에 가거나 심지어 일찍 하교하는 날엔 학교 근처 마라탕 집에도 간다. 후식으로 달달한 음료수 하나씩 사들고 공원에서 실컷 수다를 떨다 오는 코스다.


어릴 때 생각해보면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것으로 충분했고 집에 오면 약속이나 한 듯 놀이터나 집 앞 골목을 어슬렁 거리고 있으면 누구든지 어울려 놀았다. 오빠든 언니든 동생이든 오징어 사방치기를 하고 술래잡기, 구슬 치기, 산언덕 오르기, 나뭇잎 줍기, 그러다 목마르면 아무 집이나 들어가 물 한잔 마시고 나오고 그랬다. 마을 하나가 아이들을 키운다고 나 때만 해도 마을 어딜 나가도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놀며 자라 어른이 돼서는 그때 배짱 가득히 놀았던 친구들이 사회생활에서도 강했다. 나는 내성적인 아이였고 내가 주도하에 놀아본 경험보다 나도 좀 끼워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쪽에 가까웠다. 쭈뼛거리다 운 좋게 친구가 끼워주면 땡큐고 영 빈자리가 나지 않으면 구경꾼이라도 돼서 실컷 보다가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열두 발자국-

정재승 박사는 물었다. 나는 어떻게 놀 때 가장 행복한가.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이지 싶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라져 공원이 만들어진 자리에 풀장이 있었다. 아빠가 나랑 남동생 둘만 데리고 오토바이에 앞 뒤로 태워 놀러 간 적이 있다.

언니들도 없었고 엄마도 없이 오직 아빠랑 셋이 놀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정확한 기억은 안 나는데 꽃수술이 잔뜩 달린 수영모자에 핑크색 물방울무늬 무늬가 그려진 수영복을 입고 튜브에 몸을 실어 아빠 손을 의지해 놀았을 것이다. 지금은 근육이 다 빠지고 허리도 살짝 굽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아빠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아빠는 당시 내 눈엔 김종국이나 다름없었다. 남동생과 나를 동시에 놀아줄 만큼의 체력도 있었고 그보다 젊었다. 아마 지금 내 나이쯤이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살펴보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혼자 노는 사람인가, 아니면 같이 노는 사람인가?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내가 어떻게 일할 때 가장 행복한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생략)
'나는 무엇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 즐거움의 원천인 놀이 시간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열두 발자국-

코로나 감염돼서 아픈 딸 주려고 엄마는 미역국을 끓이고 아빠는 전복죽을 사서 보내주었다. 운동 다녀오는 길에 들러 마흔 중반의 딸 먹이려는 아빠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울컥했다.

어릴 때 남동생과 데리고 갔던 풀장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그래. 맞아. 아빠는 우리를 사랑했고 돌봐줬어.'

아빠의 무심함과 가시 돋친 말들로 상처받았던 청소년 시절을 잊지 못해 언니들과 아빠 욕을 수도 없이 했었는데 가만 생각하면 아빠도 내가 지금 아이들 키우며 서툴듯이 아빠 역시 서툴렀고 우리가 크면 클수록 마음 좁히기 어려워 우리 눈엔 무심한 아빠로 보였던 것 같다. 그저 아빠가 좋아하는 운동에만 빠져서 우리보단 운동이 먼저인 게 야속하기만 했는데 나는 이제 보니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즐거움을 얻고 싶어 했다. 버릇처럼 혼자가 편하다,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건 '혼자라서 너무 외로워'라는 숨겨진 내면이었던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가족과 어울리길 스스로 거부해왔다. 나이 든 부모님을 마주 할 때마다

전화라도 해야지, 고기라도 한 번 사다 드려야지 하는데 항상 야속했던 일이 먼저 떠오르기만 했다.


이젠 부모님 지시 명령에 따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야속함보다 어떤 행동을 해야 내 마음이 편안한지를 찾아봐야겠다. 그러면 이제라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놀이가 즐거움이 원천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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