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열심히'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에 못 이겨 남들이 하는 건 뭐든 따라 하고 보는 사람들을 향해 일침을 가하려던 글이었다. 물론 그 사람들 속에는 나도 포함이다.
책 많이 읽는 사람, 글 잘 쓰는 사람, 팔로워 많은 사람, 실제로도 친구가 많고 인기 많은 사람. 나한텐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은 쉽게, 거저 얻은 것이거나 뭔가 속이는 게 있을 거라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나는 남 잘되는 거 배 아파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간혹 이런 말은 해서 내 자존심을 건드릴 때가 있다. "당신은 왜 이렇게 불만이 많아.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라고.
불만이거나 투덜이 거나 둘 중 하나인데 둘 다 좋은 말은 아니니 자존심 상한 건 마찬가지다.
나는 규칙을 잘 따르고 남들이 눈살 찌푸릴만한 일이라고 여기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청렴결백, 선비사상을 지니지도 않았다. 내 생각엔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법이라는 생각이 깊게 박여 있어서다. 누구에게 교육을 받은 건 아닌데 내성적인 기질을 갖고 있어서인지 속 시원하게 내 의견을 제때에 내뱉어 본 적이 없어서인 것도 같다.
그런 게 쌓여 직장생활 14년 만에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선 지 13년. 마흔 중반의 나이가 되어 이곳저곳 다니며 눈살지푸려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입과 얼굴 표정은 투덜과 불만 그 어디쯤에 어울리는 말을 찾느라 바빠진다.
오늘도 한차례 에피소드가 있었다.
매일 집에만 있는 아이들 불쌍해서 아침 일찍 서둘러 계곡 나들이를 갔다. 점심만 먹고 사람들 몰릴 시간에 나올 요량이었다. 갑자기 가게 된 일정이라 먹을 것 준비도 안 했고 비쌀게 뻔하지만 계곡 옆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먹기로 하고 가볍게 떠났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닭백숙이었다. 두 시간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고 11시쯤 음식이 나왔다. 닭은 크고 살도 실했는데 냉동닭인지 뻑뻑하고 내가 막 끓인 삼계탕만도 못했다. 아이들은 곁들여 나온 죽만 몇 번 뜨더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여기까진 음식에 대한 투덜거림은 참았다. 잠시 후,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주차장도 차들이 꽉꽉 들어섰다. 계곡 옆 식당은 평상을 이용하게 했는데 음식을 먹으면 평상 이용이 가능했고 차는 평상과 떨어진 자리에 주차하도록 안내판이 아주 크게 붙어있었다.
몰리는 사람들과 주차장 관리가 시급해 보이는데 어떤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평상 앞에 차를 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맛없는 닭백숙을 먹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데 모래먼지 일으키며 평상 앞에 주차하는 얌체족이 슬슬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니, 안내판 안 보이나? 자기들만 평상 앞에 주차하고 자리 잡으면 우린 할 줄 몰라서 안 했을까? 아, 이 먼지. 밥맛 떨어지게.'
뻑뻑한 닭고기 살을 씹어대며 조용히 읊조렸다. 여태 가만있던 남편이 거들었다.
"여기 차 대시면 안돼요."
오, 웬일이야? 내 읊조린 말을 대변해주기도 하고? 속으로 남편이 고마웠다.
"자기야, 뭔 불만이 그렇게 많아. 그냥 그러려니 해. 이런데까지 와서 그래야겠니." 나한테도 한마디 거들었다.
휴, 그럼 그렇지. 내가 열심히 불만을 터뜨리고 투덜거려봐야 나한테 좋을 건 없구나.
지난번 '열심히'의미를 담은 글과는 전혀 다른 의미지만 아무튼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임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