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를 한 모습으로 한 손은 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면서 앉으려고 하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러한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잘 담아두었단다. "어머, 이게 나라고" 할 정도로 너는 몰라보게 성장했지만.
너는 여자아이 아니랄까 봐 주방 소꿉놀이 장난감을 제일 좋아했단다.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계란프라이도 만들고, 도마에서 야채도 썰어보고 과일주스도 만들면서 엄마랑 노는 시간을 즐거워했어. 너의 즐거움이 엄마에게도 전달되어서 오히려 작은 행복이라도 만들어 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게 네가 해준 것이더라. 그렇게 너는 엄마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많이 표현하는 아이였어. 너로 인해 엄마는 결혼하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어느새 훌쩍 자라서 이렇게 엄마에게 샌드위치도 다 만들어주고, 감동이라는 말 이럴 때 저절로 나오게 되는구나. 고맙고, 사랑한다.
내가 만든 딸의 도시락
딸이 만든 나의 샌드위치
딸아, 어느 책에서 그러더라. 자녀한테 하소연하면 안 된다고.
엄마는 말이야. 엄마가 되면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천하무적이 될 줄 알았어. 그런데 엄마는 마흔이 넘어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TV에서 독박육아로 고생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엄마는 "시월드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아요"라고 외치고 싶었단다. 육아는 당연하게 엄마가 하는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며느리 역할이라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거든.
이것은 마치 성씨가 다른 사람이 시집을 가서는 그 집안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규율 같았다고나 할까. 가부장적인 제도의 문제와 함께 시부모님이 엄마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는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이질감 같은 것이더라. 열 번 잘하다가도 한 번 못하면 못한 게 되는 억울함과 아무리 노력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계속 더 잘해야 하는 지치고 힘 빠지는 일이었어.
그래 너의 세대에서는 힘겨운 며느리 역할은 없었으면 좋겠어. 지금 변하고 있다고는 하거든. 여성들의 파워가 세지면서 서구사회처럼 고부갈등보다는 장서갈등으로 넘어가고 있대. 시부모님이 며느리를 못마땅해하듯이 장모님이 사위가 탐탁지 않게 되는 것이지. 물론 그러한 장서갈등도 없어지길 바라지만.
딸아, 이 편지는 지금은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아. 너의 공부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이렇게 사랑하는 딸에게 편지를 써보면 보다 객관적인 엄마의 모습이 보일까 싶어서, 노력하고 있는 거란다.
엄마이기에 힘내야 한다는 거 알면서도 엄마에게 평타 같기만 하던 인생길이 어떠한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