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맹샘이 잘하니까 좀 해줘요."
일 잘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새로운 일이다. 사실, 마냥 반갑지는 않다. 가만히 살펴보면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일하는 사람만 일을 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자꾸 새로운 일이 선사된다.
사실 한국의 대부분의 연봉체계는 호봉제를 기본으로 한다. 성과가 높은 사람에게 돈이 주어지는 회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연차에 따라 월급이 높아진다. 분명 내가 돈은 제일 작게 받는 것 같은데 하는 일은 제일 많은 것 같다. 옆 자리의 선배는 재테크를 한다고 업무 창과 동시에 주식창을 켜 두고 주식을 하는데, 정작 나는 화장실 갈 새도 없이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돈은 옆 자리 선배가 더 많이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자꾸 나쁜 마음이 생긴다.
일을 못하는 척할까? 하는 나쁜 생각.
실수를 하면 다음엔 일을 안 시킬까? 하는 나쁜 생각.
새로운 아이디어 내면 또 내 일이니까 가만히 있을까? 하는 나쁜 생각.
유튜브나 블로그에서는 너도나도 재테크나 투잡으로 돈을 번다고 떠들썩하다. 친구의 친구는 가상화폐로 상가를 사러 다닌다고 하고, 선배의 선배는 주식으로 강남에 입성했다고 한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비하면 내 월급은 정말 모래알 같이 작다. 내가 일을 이렇게 많이 한다고 해서 월급이 두배가 되는 것도 아니고, 자꾸 한숨이 나온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일을 해내가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기획을 하고, 그 기획대로 업무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참 행복했다. 나날이 나의 실력이 높아져 가는 것이 느껴졌고, 격려도 많이 받았다. 이렇게 앞만 보고 달리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나에게 남은 것은 부실해진 체력밖에 없다.
나의 일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 나의 일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 새로운 일이 반갑지 않아 진다. 그동안 새로운 일이 오면 활력소가 되었는데, 이제 나쁜 생각을 들며 거부하고 싶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년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의 궂은일을 맡아하면서도 항상 즐거웠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e학습터와 관련 소프트웨어를 선생님들께 알려드리고, 실시간 수업을 체계화시키고, 교육청에 연수원에 각종 연수를 하며 나눔을 실천했다. 그런데 올 4월, 깊은 우울감에 빠지고 말았다. 바로 저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열심히 일할 거라 생각하고 또 새로운 일을 준다. 나도 쉬고 싶은데 새로운 일이 선물인양 또 준다.
10년 차 즈음에 오는 딜레마일까.
작년에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온 번아웃 일까.
새로운 일이 왜 더 이상 기쁘지 않을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장담하건대,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이런 허무함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때가 반드시 한 번은 있었을 것이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이다. 첫째, 나쁜 생각을 하면서 일을 안 한다. 둘째, 좋은 생각으로 고쳐서 일을 한다. 그런데 이 둘째로 넘어가는 게 답인 줄 알면서도 마음이 잘 안 움직인다. 나쁜 생각을 해서 일을 안 하고, 일이 안 돌아갈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잘 안 움직인다.
외부에 눈을 돌리지 않고, 나에게 눈을 돌리면 아주 작은 빛이 보인다.
외부에서 나와 비교되는 다른 사람을 보지 않고,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빛이 조금 커진다.
지금 현재 맡은 새로운 일을 잘 해내는 내 미래를 생각하면 빛이 한층 커진다.
이 과정이 커리어를 쌓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된다. 새로운 일이 지치는 순간이 왔을 때, 긍정적인 사고로 바꾸는 방법은 내 안에 숨어 있다. 내 일로 인해 웃게 되는 누군가를 생각하면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보다 쉽게 얻을 수 있다.
사실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하면 당연히 억울한 마음이 든다. 나도 워라밸을 추구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까 화도 나고, 다른 사람의 여유가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나기도 한다. 새로운 일이 반갑지 않은 그때, 나의 꿈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내 커리어가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을 빛내주고 있을 거라는 그 믿음이 필요하다.
아이였을 때를 돌아보자. 교실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일을 주면 기쁘기 그지없다. 서로 옆반에 심부름을 하겠다고 난리고, 급식당번을 하고 싶다고 난리다. 선생님 옆을 기웃거리며 일 시킬 것 없다 찾아보고 있다. 이번에 학생과 교사 대상으로 동아리 컨퍼런스를 하게 되었는데 진행자를 하겠다는 학생만 4명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해보고 싶은 사람을 물었을 때 12명 중 4명이 진행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아이들은 그렇다. 누가 시키든 찡그리지 않고, 기꺼이 내가 나선다.
어른이 되어가며 무수한 실패와 면박을 겪으며 어른들은 자처하는 일을 주저하게 된다. 그러면서 일 잘하는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불평하게 된다. 일 잘하는 나무에게는 진짜 계속 일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 일은 그 나무의 단단함이 되어 나무를 더욱 크고 건강하게 자라게 한다. 아이들은 그 속성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자처하여 나서는 것이다.
사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회사에서 개인으로 보면 마냥 좋은 일은 아니긴 하다. 매번 신나서 일을 하다가도 나보다 일을 덜 하는 옆사람이 돈을 더 버는 것을 보면 김이 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 때 내가 나섰던 일들이 나의 무한한 성장동력이 되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도 일 잘한다는 이유로 새롭게 선사되는 일을 하는 당신을 응원한다.
새로운 일을 기꺼이 해내는 당신의 꿈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