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한 다음엔 뭘 해야 할지 길을 잃은 당신에게, 아이로 돌아가라 #1
"나는 지우개이다. 왜냐하면 내가 나타나면 주변 친구들이 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은 저 말 때문이었다.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 나는 ___이다. 왜냐하면___이기 때문이다.' 3월 둘째 주, 수업시간에 나를 비유하는 표현을 해보는 시간이었다. 항상 조용히 앉아서 선생님의 말을 경청하고,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묵묵히 듣고 있는 아이.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과제물을 성실히 내며 모두가 착실하다고 이야기하는 아이. 그 아이의 결과물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을 보면 할 말이 없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어른들도 그럴 때가 있다. 여럿이 있을 때는 하하호호 웃다가도, 어떤 사람과 단 둘이 있을 때는 할 말이 없어지는 때.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이, 다리에 기어오르는 개미처럼 스멀스멀 불편해지는 때. 이 아이는 바로 그 순간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칭찬을 10마디 해도, 마음속에는 아쉬운 소리 0.5마디가 남을 때가 있다. 말줄임표 뒤에 숨긴 표현이 사실은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정말 좋다. 그런데 말이야."
이 말 뒤에 숨겨진 말을 아이는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숨겨진 말을 마음으로 듣게 되면서 점점 말이 줄어들고, 말 꺼내기가 두려워졌다. 좋은 점이 정말 많은 아이였기에 말이 없는 단점 하나가 더욱 크게 부각되었다. 그 단점은 다시 한번 "그런데 말이야"로 돌아오게 되었다.
사회에 나오는 순간, 우리가 그렇게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매일 부딪히며 깨닫는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낸 하루일수록, 작은 실수 하나가 밤에 잠을 쫓는다. 완벽했던 하루에 내가 한 작은 실수가 '그런데 말이야'로 따라붙게 된다. 이 아이에게 작은 실수는 침묵이었던 것이다.
이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작은 실수를 들여다봐야 할까?
작은 실수는 정말 신기하게도 들여다보면 볼수록 점점 커진다. 좋았던 것도 한가득인데 작은 실수만 점점 커 보인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실수는 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실수를 다루는 방식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실수를 다루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가볍게 실수를 인정하고 넘어가서 다음 스템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굉장히 힘들다.
"작은 실수를 보지 마. 네가 가진 건 엄청나게 크다."
아이와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 아이의 좋은 점을 마음껏 칭찬해 준다. 친구들 앞에서는 친구들의 질투를 살까 봐 말하지 못했던 좋은 점을 마음껏 쏟아낸다. 아이의 얼굴이 햇살을 받은 민들레처럼 노랗게 노랗게 물든다. 따뜻한 말이 아이의 빛이 되어 진달래처럼 붉게 붉게 물든다.
어른에게도 이런 시간이 참 필요하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별 것 아닌 것들도 칭찬을 받는다. "어머, 우리 아들 오줌도 혼자 싸고 대단한데!" "어머, 우리 딸 벌써 엄마 소리를 했어. 천재 아니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데 말이야"가 점점 붙는다. 바라는 점이 점점 커진다. 그걸 이루지 못하는 내 마음의 불편한 짐도 점점 커진다.
하지만 그럴 때는 나 혼자서라도 종이 한가득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써보면 좋다. 물론 주위에 있는 사람이 그 말을 해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사회에서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잔뜩 칭찬의 말을 쓰고 읽어주자. 그리고 그 칭찬을 비유로 표현해 보자.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내 자신을 마음껏 북돋아 주자. 누구보다 자신감 있게 손을 들어 내 의견을 발표하던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나에 대해 더욱 관대해 질 수 있다.
"나는 지우개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어 다른 사람의 걱정을 지워주기 때문이다."
함께 1년을 보낸 후, 그 아이가 쓴 선물 같은 비유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잔뜩 따뜻한 말을 해 줄 수 있다. 따뜻한 말과 배움으로 아이의 마음을 가득 채워 줄 수 있다. 따뜻한 들을 곳이 없는 어른들도 따뜻한 말을 스스로에게 잔뜩 해주자. 그리고 나를 비유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