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이 시작되는 6학년 엄마들의 마음
"선생님, 우리 아이가 부족한 게 수학 같은데 학원에 가기 싫데요."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에게 말씀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상담을 하다 보면 흔히 마주하게 되는 엄마들의 고민이다. 6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점점 자신의 주관이 뚜렷해진다. 집에서 말수도 부쩍 줄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특히 하기 싫은 것을 하기 싫다고 뻗대기 시작하면 정말 감당이 안된다. 특히 공부 문제로 제일 많이 부모님과 부딪히는 시기다.
그나마 학교에서는 사회적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은 한다. 친구들의 눈으로 봤을 때,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는 엉망진창인 아이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아이들만큼은 공부를 하고 싶은 욕구도 누구보다도 크다. 그런데 왜 학원에 가기 싫다는 걸까?
엄마들은 6학년이 되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7살 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7살 때는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걱정이었다면, 6학년 때는 성적이 걱정이다. 예전처럼 아이들의 성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공식적으로 없다. 일괄평가가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성장을 돕기 위한 평가의 관점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서술형 평가나 수행평가로 아이들의 성장을 평가한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대학교에 입학하려면 중학교 성적부터 관리해야 한다는데 엄마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조급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6학년 아이는 세상 태평한 것처럼 보인다. 방학에 책이라도 한 줄 더 읽었으면 좋겠는데, 유튜브를 보면서 킥킥대고 있다. 과학책 말고 사회책도 좀 읽었으면 좋겠는데, 과학책만 주야장천 붙들고 있다. 수학 문제를 척척 풀었으면 좋겠는데 어렵다고 책을 덮는다.
부모님 입장을 공감해 드리면 부모님의 고개는 위아래로 요동친다. 그러면서 깜짝 놀란다. 선생님은 어쩜 그렇게 잘 아시나요? 그럼 빙그레 웃으며 "어머님도 그러셨을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라고 말씀드린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인다.
아이들의 내적 동기는 어른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미술작품 하나를 만들 때에도 어른이 보기에는 정말 의미 없는 찰흙한덩이일지라도 아이들은 정성을 다해 자신의 작품을 만든다. 작품마다 이야기가 들어있고, 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선생님들은 매번 아이들의 내적 동기에 감탄한다. "어른이었어봐요. 누가 그걸 그렇게 열심히 하겠어요?" 아이들의 기특함에 우리는 매번 아이들의 내적 동기를 칭찬한다.
6학년도 마찬가지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적 동기는 여전히 강하게 존재한다. 반면 자신이 잘하고 못하는 것도 굉장히 잘 안다. 학교생활을 6년이나 하며 아이들이 마주한 아이들은 가뿐히 100명을 넘는다. 그 많은 아이들과 학교와 학원에서 부딪히며 아이들은 자신이 잘하고 못하는 것을 냉정하게 파악하게 된다.
아이의 입장에서 가만히 살펴보니 수학은 도저히 모르겠다. 옆에 친구한테 물어봐서 설명해 주면 일단 알았다고 한다.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6학년 아이에게 자존심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그런데 내가 못하는 수학을 학교가 아니라 학원까지 가서 배우라고 말한다. 그것도 매일 잔소리하는 엄마가 말이다.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어른도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한다고 생각해 봐라. 어떤가. 나는 요리하기 정말 싫은데 자꾸 요리를 연습하면 잘할 거라고 계속하라고 한다. 학원도 다니라고 한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고. 가면 분명 요리의 달인들이 있을 텐데, 버벅대는 내 모습이 상상된다. 학원으로 한 발도 떼고 싶지 않다. 그것도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해야 한다면? 너무 싫다.
6살 아들을 태권도 학원에 보내는데 태권도 학원에 가는 날이면 기분이 안 좋다. 조그마한 일도 트집을 잡아 짜증을 내고 운다. 태권도 학원에 가서 지켜보니 아이는 항상 잘 못해서 칭찬 포인트도 받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한다. 걸음마도 늦더니 운동은 영 꽝이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내 또래에 잘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하기 싫다. 그래서 아이를 다른 태권도 학원으로 옮겨주었다. 형들과 함께 하는 태권도장으로. 아이의 마음은 한결 편하다. 형들은 형이라서 잘하는 거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형들이 그냥 귀엽게 봐준다. 태권도 매일 간단다. 너무 좋단다.
학원을 다니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는 내적 동기를 깨우는 것이 꼭 필요하다. 아이가 거부하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숨어있다. 6학년 아이의 경우는 대부분 "쪽팔리기 싫어서"다. 자기도 분명히 필요성은 알지만 쪽팔릴게 뻔히 보이기 때문에 발을 들여놓기 싫은 것이다. 이때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환경의 변화는 작은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아이가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아이가 80% 풀 수 있는 문제집을 우선 풀 수 있게 한다. 강요하지 말고 아이에게 기회를 준다. 아이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도록. 6학년 아이에게는 부모의 인내심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 문제집을 봐주기 힘들다면 집단으로 동시에 수업을 나가는 학원이 아닌 개개인의 진도에 맞춰주는 학원을 보낸다. 사실 학원보다는 인터넷 강의가 6학년 아이의 내적 동기를 깨우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쪽팔리지 않고 자신의 진도에 맞추어 학습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부모의 조급함을 눈치챈다. 그리고 부모의 조급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속상해한다. 부모가 속이 터진다면, 아이의 마음속에는 이미 화산이 폭발해 마그마가 흘러 굳어지고 있을 것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잘 안돼서 아이의 마음엔 응어리가 졌을 것이다. 이걸 녹일 수 있는 건 부모의 따뜻한 눈빛과 말이다. 물론 쉽지 않다. 그래도 해야 한다. 내 아이를 위해서.
6학년 학생들은 겉으로는 강하고 큰 척하지만 속으로는 너무도 여리고 어린애다. 고작 13년을 살아온 아이들이 덩치가 커졌다고 너무 어른 취급을 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사실 우리 어른들도 진짜 내가 어른이 맞나 싶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아이들은 당연히 너무도 여리고 어린애인 것이다. 부모님의 마음의 변화가 아이의 내적 동기를 깨우치는 마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