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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필방 10화

기억을 더듬다(9)

애경백화점을 아시나요 <달님을 사랑한 굴뚝새>

by 권수아

나 어릴 적에는 ‘애경백화점’이 있었다. 그래, AK플라자의 전신 ‘애경백화점’ 말이다. 애경백화점을 생각하면 즐거운 기억들이 떠오른다.


먼저, 엄마가 애경백화점에서 진행한 주부 글쓰기 대회(정확한 명칭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애경백화점을 이용하는 주부들이 주축이 된 글쓰기 대회였던 것 같다.)에서 대상으로 100만 원을 받으신 기억이다. 내 여동생과 나는 엄마가 상을 타시는 모습도 보았고, 직원들은 우리를 사진 찍었다. 엄마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던 기분 좋은 이벤트였다.


그리고 애경백화점의 문화센터를 통해 이동렬 작가님으로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배운 기억이다. 그때도 나는 몸이 허약했었고, 집과 애경백화점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타면 멀미를 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이동렬 작가님의 강의를 들었고, 그만큼 나는 그것을 좋아했다. 이동렬 작가님의 책도 당시엔 많이 읽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내 서재를 뒤져보니 이동렬 작가님의 책은 딱 한 권, 지금은 단종된 <달님을 사랑한 굴뚝새>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다른 선택지 없이 이동렬 작가님의 책 중 당장 읽을 수 있는 책 <달님을 사랑한 굴뚝새>를 읽고 서평을 쓴다.


<달님을 사랑한 굴뚝새>는 총 17편의 단편 동화가 실린 동화집이다. 나는 17편의 동화들 중에서도 <달님을 사랑한 굴뚝새>와 <동물왕 선거>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동화 <달님을 사랑한 굴뚝새>는 책 제목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작가의 입장에서 동화집에 실린 동화들 중 이 동화를 가장 최고로 여겼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동화 <동물왕 선거>는 이 동화집에 실린 동화들 중 가장 길고 ‘숲 속 동물나라’, ‘꿍꿍이속’, ‘쫓겨난 동물왕’, ‘새로 왕이 된 다람쥐’라는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화 <달님을 사랑한 굴뚝새>는 어린 굴뚝새가 부모 굴뚝새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달님을 향해 이루어지지 못할 짝사랑을 하다가 죽는다는 내용이다. 보통 동화에는 어린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작가의 태도가 드러나기 마련이나, 이 동화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독자들에게 ‘애절함’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의 폭을 넓히는 것 역시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동화 <동물왕 선거>를 읽으면서는 시국이 생각났다. 동물나라는 너무 평화로워서 동물의 수가 몰라보게 늘어나고 그 때문에 먹이 다툼이 잦아진다. 그래서 동물들은 나라를 다스릴 왕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랑이가 왕이 되지만, 호랑이는 호랑이 무리만 우선시할 뿐 다른 동물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동물들은 호랑이를 왕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다. ‘아무리 힘 센 호랑이라도, 구름처럼 몰려드는 동물들을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188p)라는 문장에서는 윤 대통령의 탄핵이 연상되었다. ‘아무리 힘 센 대통령이라도, 구름처럼 몰려드는 국민들을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왕을 뽑기 위해 동물들이 모인 자리에서 노루는 “바쁘다고 우리의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한두 동물이, 나 하나 빠지면 어때, 하는 생각을 가질 때 우리는 또 호랑이 왕과 같은 동물을 왕으로 모실지 모를 일입니다. 그때는 그 왕이 나쁜 짓을 해도 우리는 불평 불만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193p)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은 노루의 말처럼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시국선언을 하고, 시위를 한다. ‘입장 바꿔 보기’ 운동과 ‘일주일 왕 되어 보기’ 운동을 하자는 다람쥐가 동물나라의 새로운 왕으로 뽑히는 것이 결말이다. 그러하니 우리나라도 곧 다람쥐와 같은 좋은 대표가 새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나는 좋은 책이란 언제 읽어도 감동이 있으며 시의성을 지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앞에서 다룬 두 동화는 당연하고, 다른 동화들도 그러했다. 이동렬 작가님은 여러 아동문학상을 받으셨다. 하지만, 내가 읽은 이동렬 작가님의 동화는 그분의 전체 작품 수 중에서는 극소수이며, 솔직히 나는 이동렬 작가님의 문학과 삶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이동렬’을 검색하면 많은 도서들이 나온다. 이동렬 작가님에 대한 앎을 통해 어린 시절의 나와 재회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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