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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출발(2)

나의 최애 소설 <새는>

by 권수아 Dec 29. 2024

 바로 전 글에서 나는 송파구로 이사 후에 여러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송파구로 이사를 하고 나서 나는 한 국어학원에 다니게 되었는데, 내가 여러 책들을 읽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 국어학원으로 인해 '문학'이라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특히 시 분석은 음식으로 치자면 별미 중의 별미였다. 윤동주의 시 <서시>를 개구리 분석(?)하기도 했다.


 "자, 제목이 '서시'예요. '서시'는 '책의 첫머리에 서문 대신 쓴 시'를 뜻합니다. 그래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가장 먼저 실린 시가 바로 이 '서시'입니다. 이것도 필기하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하늘에 네모. 하늘은 이상향을 뜻합니다. 뒤에 하늘 말고도 다른 이상향이 나와요. 그 다른 이상향에도 네모를 할 거예요. 2행,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에는 순수한 삶에 대한 의지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여기는 밑줄치고 순수한 삶에 대한 의지라고 씁시다. 그런데 바람이 나오죠? 바람은 시련이나 고난이므로 세모. 잎새에 이는 바람이니 작은 시련에도 괴로워한 거예요. 이렇게 작은 시련에도 괴로워한 윤동주인데, 일제강점기라는 큰 시련에는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4행에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괴로움이라고 쓰고 물결표. 다음 행에는 별이 등장합니다. 아까 하늘 외에도 다른 이상향이 나온다고 했지요? 그 다른 이상향이 별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와 같이 별에도 네모. 6행부터 7행까지는 2행처럼 의지가 드러나요. 그래서 6행, 7행도 2행과 같이 밑줄. 마지막 행이자 연에는 여러 시어들이 등장합니다. 밤은 3행의 바람과 비슷한 의미니까 세모, 이상향인 별은 5행처럼 네모, 바람은 당연히 세모."

브런치 글 이미지 1

 이런 식으로 나는 네모와 세모와 밑줄과 물결표를 그리며 시를 공부했다. 물론, 소설에도 관심이 갔다. 그 국어학원의 큰 책꽂이에서 어쩌다 박현욱 작가의 <새는>이 내 손에 들어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MBC 베스트극장 <새는>을 먼저 봤는지, 소설 <새는>을 먼저 읽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나는 소설 <새는>을 읽고 단박에 박현욱 작가의 팬이 되었다. 박현욱 작가가 그 당시까지 출판한 다른 모든 책들 <동정 없는 세상>, <아내가 결혼했다>, <그 여자의 침대>도 국어학원 책꽂이에 있었고 나는 박현욱 작가의 팬답게 다 읽었다. (챕터 '새로운 출발'에서는 여기서 언급한 책들을 모두 다룰 예정이다.)


 소설 <새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주인공 은호는 은수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은수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문예반에 들어가고, 공부를 한다. 그런 은호를 현주는 기타 학원에서 처음 만나고 짝사랑하게 된다. 줄거리가 단순하다고 감동이 없는 건 절대 아니다. 은호가 은수를 생각하는 문장들에서는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마치 하늘 위의 달 같았다. 보기만 해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곤 했다."(44~45p) "내게 있어 은수는 하늘 높은 곳에서 은은하게 서늘한 빛을 비추는 달 같은 존재였다."(89p) 은호가 은수를 달에 비유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은호의 은수를 향한 짝사랑은 어쩌면 비현실적이다. 반면, 현주의 은호를 향한 짝사랑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앞으로 누굴 좋아하더라도 나는 그저 가슴이 조금 이상한 정도로, 딱 그 정도로만 좋아할 거야."(236p) 물론, 현주의 짝사랑 역시 독자인 나로서 울컥하게 만들었다. 챕터 'bonus track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에는 은호가 주인공인 다른 챕터들과는 달리 현주의 은호를 향한 짝사랑이 일기처럼 편지처럼 담겨 있었는데 코끝이 찡해졌다. "그동안 좋은 일들만 있었습니다. 단조롭고 밋밋하기만 했을 고등학교 삼 년이 그 아이 덕분에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227p)


 그래서 작가가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주려고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은호처럼 짝사랑 상대를 만들고 한 단계씩 성장하세요? 그건 아닐 것이다. 그 메시지를 주려면 짝사랑으로 끝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최애 작가가 그렇게 단순한 메시지를 주려고 200페이지가 넘는 글을 썼을 리가 없다. 나는 좋은 작품은 메시지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설 <새는>은 재미있고, 울컥하고, 메시지가 숨어있다. 섬세한 눈길로 소설을 살펴보니 이런 문장이 있었다. "Alles hat seine Zeit! (...)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제각기 다 자신의 시절이 있다."(196p)


 나 역시 나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이 글의 초반부에 시 분석으로 많은 분량을 사용했다. 벌써 17년 전 일인데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그때가 내가 문학을 처음 만났을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나의 시절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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