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욱 작가의 책들은 일단 재밌다. 지난주의 <새는>도 그랬고, 이번주의 <아내가 결혼했다>도 그러하다. 그리고 다음 주에 서평을 올릴 <동정 없는 세상>, 다다음주에 서평을 올릴 <그 여자의 침대>도 전에 읽었던 경험들을 되짚어보면 재밌었다. 박현욱 작가가 18년 만에, 그러니까 약 넉 달 전에 출간한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를 나는 아직 읽지 않았다.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가 재밌을지 어떨지 잘 모르므로 이것만 제외하더라도 대체적으로 박현욱 작가의 책들은 재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재밌는 책들을 읽고 글을 쓰기란 어렵다. 쉽게 읽히는 책들을 상대로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박현욱 작가의 매력인 것 같다.<아내가 결혼했다> 역시 지난주에 서평을 올린 <새는>처럼 술술 읽혔지만, 또 <새는>의 서평을 쓰기가 어려웠듯이 <아내가 결혼했다>의 서평도 쓰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원작과 함께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도 보았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평점은 10점 만점에 5점대이다. 특이한 게, 5점을 준 관람객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고 10점을 준 관람객과1점을 준 관람객의 비율이 비슷해서 5점대이다. 그러니까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린다는 뜻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일단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줄거리는 책과 영화의 공통적인 부분 위주로 서술된다.
인아라는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 있다. 덕훈은 인아에게 푹 빠져버린다. 다만, 인아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는데 술을 자주 마시며 애인 덕훈이 아닌 다른 남자들하고도 잔다는 것이다. 덕훈은 그럼에도 인아가 너무 좋다. 중간에 헤어지자고 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만나자고 거의 구걸을 할 정도로. 덕훈의 친구 병수는 결혼을 추천하고, 덕훈은 인아를 조르고 졸라 결국 결혼하게 된다. 물론, 결혼한다고 인아가 변한다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인아는 덕훈에게 결혼하고 싶은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말한다. 그것도 덕훈과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이 부분에서는 너무 놀라서 벙쪘다. 여기서 반감을 느껴서 별점 테러를 한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아무튼, 인아는 첫 번째 남편인 덕훈의 집, 그리고 두 번째 남편인 재경의 집에서 두 집 살림을 한다. 그러다가 딸 지원도 생긴다. 지원의 돌잔치도 공평하게(?) 덕훈의 가족과 한 번, 재경의 가족과 한 번 한다. 여기서 책과 영화의 다른 점이 있다. 책에서는 덕훈이 재경의 가족들이 모인 딸 지원의 돌잔치에서 인아와 자신이 법적 부부임을 널리 알리는 '돌잔치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계획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혹은 실행하지 못한다. 영화에서는 덕훈이 '돌잔치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그 자리에서 인아는 지원을 데리고 도망친다. 하지만, 책과 영화의 결말은 비슷하다. 인아ㆍ덕훈ㆍ재경ㆍ 지원이라는 네 사람이 이민을 가폴리아모리스트로서 사는 것을 예고하거나,이민을 간 네 사람의 행복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책에서는 인아의 끈질긴 설득으로 덕훈이 이민을 결심하지만, 영화에서는 인아의 빈자리를 함께 느낀 덕훈과 재경이 친해져서 네 사람이 이민을 가게 된다.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다르지만 책이든 영화이든 해피엔딩이다.
애인이나 배우자의 바람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은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가 너무 불쾌했을 것이다. 그래서 낮은 평점을 주었겠고. 이해한다. 하지만, 불쾌한 감정만을 느끼라고 책이 출판되고 영화가 상영되지는 않았겠다. 나는 <아내가 결혼했다>를 접하면서 동성혼을 한 지인이 떠올랐다.
동성혼을 앞둔 어느 날, 그 사람이 커밍아웃을 하기 직전의 머뭇거림은 상대방인 나 역시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지?' 그 사람은 마침내 커밍아웃을 했다. 바로 든 생각. '아, 그렇구나.' 그래, 솔직히 그 말을 듣자마자는 많이 놀랐다. 하지만, 인정을 하고 안 하고의 위치에 내가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그리고 동성혼의 비율이 생각보다 높으며 그중 하나가 내가 아는 사람의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내가 조금은 갑작스럽게 동성혼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의 폴리아모리나 내 지인의 동성혼이나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여러 형태의 사랑을 할 권리가 있다. 다만, 우리네 인생의 권리이자 의무는 행복하게 살기가 아닐까. 그래서 박현욱 작가는 서술했다. "그녀는 두 명의 남편 앞에서 의연했고 당당했으며 무엇보다 행복해 보였다. 오직 행복한 삶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삶이라고 말하려는 듯이."(26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