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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필방 15화

새로운 출발(5)

박현욱 작가의 유일한 단편 소설집 <그 여자의 침대>

by 권수아

책 <그 여자의 침대>는 박현욱 작가의 유일한 단편 소설집이다. 여기에는 <그 여자의 침대>를 포함해 <벽>, <생명의 전화>, <이무기>, <연체>, <해피버스데이>, <링 마이 벨>, <그 사이>라는 총 여덟 편의 소설들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그 여자의 침대>와 <생명의 전화>에 대한 생각을 서술하고자 한다.


소설 <그 여자의 침대>는 제목 그대로 '그 여자의 침대'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에게 남자가 생겼다. 그러니까 여자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런데 철제 침대가 삐걱거렸다. 안정적인 섹스를 하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여러 이유들 때문에 여자는 침대를 바꿨다. 여자는 자신의 소유물이, VTR이라든지 에어컨이라든지 빨간 마티즈라든지 하는 것들이 남자를 흡족하게 해서 흐뭇했다. 하지만, 침대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여자는 더블침대를 구입했지만, 슈퍼싱글로 바꾸려고 했고 기어이 바꾸고 말았다. 사실, 여자에게는 이혼 경력이 있다. 여자는 지금의 애인이 침대의 빈자리를 남겨두고 떠날 수도 있음을 과거 이혼에서부터 시작된 아픔 때문에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소설 <그 여자의 침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간 이유는 우선적으로 '1. 책 제목으로도 <그 여자의 침대>가 사용되었음 2. 가장 먼저 실린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 외의 중요한 이유는 이전에 읽었던 박현욱 작가의 소설들과는 다른 결이 느껴져서다. 나는 박현욱 작가의 소설들 <새는>, <아내가 결혼했다>, <동정 없는 세상>을 읽었다. 이 세 편 설들의 공통점은 남성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박현욱 작가가 남성 주인공의 시점에 특화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소설 <그 여자의 침대>를 읽고 나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 주인공의 쉽게 채워지지 못하는 은밀한 내면세계를 잘 묘사한 소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설 <생명의 전화>는 약 한 달 전쯤에 내가 한 일을 떠오르게 했다. 평상시에도 사는 게 고달프다고 느끼지만, 그날따라 더 고달팠다. 좁은 원룸의 좁은 침대에 웅크려 꺼억 울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럴 때 특히나 말할 상대가 없음은 동서고금의 진리가 아니던가. 그래서 떠오른 것이 109였다. 상담사는 나의 울음 섞인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잠들었고, 일어났고, 출근을 했고, 일을 했고, 밥을 먹었고, 또 일을 했고, 퇴근을 했다. 어떻게든 세상은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면이 조금은 더 단단해졌다. 아래는 당시 나와 익명의 누군가가 주고받은 카톡이다.

이렇게 나는 치유될 수 있었다. 그런데, 소설 <생명의 전화>의 주인공과 파니는 마음이 너무 허해져서 공중에 몸이 떠오를 지경이 되었는데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 주인공은 '생명의 전화'를 시도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보다도 훨씬 절박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걸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갑자기 전화 상담 자원봉사를 떠올리지만, 시간과 수강료를 보고 마음을 접는다. 이렇게나 저렇게나 사각지대에 놓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주인공은 어떻게 되었을까. 몸이 조금씩 조금씩 떠오르다 못해 홀연히 날아가버렸을까.


이게 두 편의 소설, <그 여자의 침대>와 <생명의 전화>를 읽고 난 뒤의 짤막한 소감이다. 앞서 내가 서술하지 않은 소설들도 당연히 좋았다. <벽>을 읽으면서는 주인공의 성장기를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시대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무기>에서의 바둑 묘사는 내가 바둑에 대해 잘 알았다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을 것 같다. 박사학위는 취득했지만 교수 임용도 되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을 <연체>는 보여줌으로써 나에게도 어두운 미래가 있을 수 있음을 자각하게 했다. <해피버스데이>는 '남자 주인공의 짝사랑'이 주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새는>을 떠올리게 했다. <링 마이 벨>을 읽으면서는 평화로운 가정생활을 위해서 양보가 필요함을 배웠다. <그 사이>의 주인공은 두 번 이혼하는데, 쓸쓸한 그 사람의 내면이 묻어났다.


책 <그 여자의 침대>에 대해 씀으로써 '내가 학창 시절에 읽은 박현욱 작가의 책들에 관한 서평들'이 마무리된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어서 기뻤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박현욱 작가가 최근 발매한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는 아직 읽지 못했으니 감히 작품 세계를 알았다고 한다면 오만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시간이 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어쩌면 올해 내에, 아직 읽지 못한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도 <새는>과 <아내가 결혼했다>와 <동정 없는 세상>과 <그 여자의 침대>가 그러하였듯이 '좋은 감정'이라고 통틀어 말할 수 있는 그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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