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감동을 전하는 시집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안도현 시인은 2007년 5월부터 2008년 4월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집배원'을 맡아 매주 시 한 편씩을 배달했다. '문학집배원'에 대해 소개하자면, 안도현 시인이 꼽은 좋은 시와 그 시의 낭송과 그 시의 해설이 메일로 오는 시스템이다. 나도 '문학집배원'의 독자였고, 시가 배달될 때마다 마음이 춤췄다. 그때 나는 감수성이 풍부했던 여고생이었으니 특히나 그러했다. 책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는 이렇게 내 마음을 춤추게 만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사무국의 '문학집배원 안도현의 시배달'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시를 배달하며'라는 이름의 프롤로그에서 안도현 시인은 "부디 당신도 감염되어 치유할 수 없는 시의 열병 속에 갇혀서 헤어나지 못했으면 좋겠습니다."(5p)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속으로 외친다. "네네! 시의 감동에 감염된 한 문학도가 여기 있어요. 이 시집이 발행된 지 17년이 지났는데도 시의 감동 덕택에 다시 톺아보고 있어요!"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의 제목은 그 부에 담긴 시들 중 하나의 시와 관련이 있거나 그 시에서 따온 것이다.
제1부의 제목은 '사랑말고는 다 고백했으니'다. 이것은 김남조 시인의 <참회>와 관련이 있다. <참회>의 1연은 '사랑한 일만 빼곤/나머지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진작에 고백했으니/이대로 판결해다오'다. 1연의 4행만 제외하고 문맥을 다듬으면 '사랑말고는 다 고백했으니'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랑에게도 분명 잘못하였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랑한 일만 빼곤 나머지 모든 일'과 '사랑'에게 잘못하였기에 모든 것이 다 본인의 잘못이다. 그 결과로 화자는 운다. 감정의 응어리를 표출한다. 카타르시스다. 이 과정을 통해 젊어지고, 새봄이 온다. 그런데, 젊음과 새봄에도 불구하고 다시 참회하겠다고 한다. 김남조 시인에게 사랑이 그렇다. 사랑 빼고 모두 잘못한 것 같고, 사랑 자체에도 잘못이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자신을 차가운 돌 위에 세워두고야 마는 것.
제2부의 제목은 '눈물은 왜 짠가'다. 이것은 함민복 시인의 시 <눈물은 왜 짠가>의 제목에서 따왔다. 내가 고등학생 때 문학 자습서에서 이 시를 접한 기억이 있다. 이 시는 산문시라서 이해가 어렵지 않다. 화자는 가난한 자신을 눈치껏 챙겨주는 어머니와 설렁탕집 주인아저씨의 배려에 땀인양 눈물을 훔친다. 생각해 보면, 가난이란 게 꼭 나쁘지만도 않다. 가난한 날에만 할 수밖에 없는 행동과 그로 인해 느끼는 감정이 있다. 그러므로 화자와 어머니와 설렁탕집 주인아저씨의 술어는 동질감을 이룬다. 그리고 나는 내가 누리지 못한 '가난한 서정'을 느껴보기 위해 오래전에 발행된 함민복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를 약간은 충동적으로 서점에서 구매했다. '온전히 살기 위해 버텨 온 날들, 그 안에 먹먹히 절은 삶의 풍경들, 잊고 있던 서정의 맛'(표지)이 '눈물은 왜 짠가'라는 여섯 음절에 담겼다. 그러게, 눈물은 왜 짤까요.
제3부의 제목은 '짝사랑의 흔적들'이다. 이것은 이윤학 시인의 시 <꼭지들>의 시구에서 따왔다. '이파리 하나 붙어 있지 않은 감나무 가지'의 '꼭지들'을 '짝사랑의 흔적들'이라고 한다. 꼭지들을 부모, 열매들을 자녀로 치환할 수도 있겠다. '빈 둥지 증후군'이 떠오르는 시다. 그런데 나에게는 '빈 둥지 증후군'을 떠올리는 1연, 2연, 5연만큼이나 3연과 4연도 인상 깊다. 꼭지들은 왜 가지를, 나무를 떠나지 않을까. 이에 대한 대답이 '열매들을 기다리기 때문'일 수는 없다. 열매들은 이미 꼭지들을 떠났고, 돌아오지 않거나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꼭지들에게도 생애에 대한 욕심이 있기에 가지든 나무든 떠나지 않는다. 그 욕심이 흔들림을 만든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흔들림은 열매들이 있어 만끽하지 못했던 자유로움을 꼭지들에게 만들어준다.
책 제목이자 제4부의 제목은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다. 이것은 허수경 시인의 시 <혼자 가는 먼 집>의 시구에서 따왔다. '당신'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무려 뜻이 다섯 가지나 된다. 1. 듣는 이를 가리키는 이인칭 대명사. 하오할 자리에 쓴다. 2. 부부 사이에서, 상대편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3. 문어체에서, 상대방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4. 맞서 싸울 때 상대편을 낮잡아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5. '자기'를 아주 높여 이르는 말. 이 시에서의 '당신'이란 아마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의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허수경 시인이 참 좋다고 한 그 '당신'이라는 말은 '킥킥' 웃음소리와 함께한다. 허나, 내용을 보면 마냥 우습지만은 않다. 삶의 희로애락이 있다. 그러나, '킥킥'이라는 명량한 소리와 함께하기에 가볍지만은 않은 삶을 '당신'이라고 불리는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책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의 끝부분에는 '이 책의 시인들'과 '작품출전'이 담겨있다. 그리고 육성낭송시집(MP3)이라고 CD 한 장이 붙어있다. 요즘엔 자주 사용되지 않는 도구지만, 이 책이 발간되었을 무렵에만 해도 CD가 자주 사용되었고 더불어 CD 플레이어도 유행하는 아이템이었다. 오랜만에 CD를 들어봐야겠다고, 시를 더 느껴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