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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필방 17화

새로운 출발(7)

얽히고설킨 신비주의 <그곳이 어디든>

by 권수아

이 책 <그곳이 어디든>은 내가 지난주에 다룬 책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와 함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고등학생 때 받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나는 책꽂이에 꽂힌 책 <그곳이 어디든>을 보고 이 책이 어떤 경위로 나에게 오게 되었는지 기억해 내기 위해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짤 수밖에 없었다. 책 <그곳이 어디든>은 나에게 '어려워서 읽다가 덮어둔 책'으로 생각되었다. 다시 말하여, 나는 책 <그곳이 어디든>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고, 그러므로 정독한 책이 남기는 머릿속의 흔적도 없었다. '어려움'이 '다가옴'을 흡수한 것 같았다. 그래도 책 표지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2007 우수문학도서'라고 쓰인 노란 동그라미가, 그중에서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라는 아홉 글자가 책 <그곳이 어디든>이 책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와 짝꿍으로 함께 내게 온 책이었음을 기억해 내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를 추억 삼아 나는 책 <그곳이 어디든>을 읽어 나갔다.


작품의 주인공은 '유'이다. 유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서리에서나 을의 위치에 있는 약자다.


유의 아내는 유보다 자신의 전 동거남을 더 사랑한다. 아니, 유를 사랑하지 않고 전 동거남을 사랑한다. 유의 돈으로 전 동거남의 빚을 갚아줄 정도다. 심지어 아내는 유와 섹스를 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일들이 유의 마음을 많이 상하게 했을 것이다. 유는 어느 날 아내의 몸을 강제로 탐하려고 했다. 아내는 유를 경멸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유는 그 눈빛으로 인해 온몸에 힘이 풀렸다. 그 일 이후, 유는 성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여기서 나는 묻고 싶다. 물론 유의 행동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얼마나 상처를 받았기에 성불구가 되었느냐는 말이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 또한 괜찮지 않은 큰 문제다. 남성이 강한 위치에 있는 대부분의 가정들과는 달리 이렇게 유는 아내보다 약한 위치에 있다.


유는 직장에서도 철저한 을이다. 전근 또는 퇴사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초반부에 나온다. 무슨 선택을 하든 직장으로부터 배척당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서리로의 전근을 선택한 유는 그곳에서 이상하고 힘든 일들을 겪고 부장에게 상황을 보고하였으나 부장은 유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가정에서도 사랑받지 못하고 직장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유는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서리에서도 외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특히 추어탕집 여자는 유가 강제적으로 성매매를 하도록 만든다.


그래도, 성매매의 시도로 인해 유는 일종의 구원자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내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꿈쩍하지 않는 유의 초라한 성기를 받쳐든 그녀가 구원자였다. 유의 성기를 본 그녀의 "왜 이래요?"라는 한 마디에 안타까움이 묻어있음을 나는 느꼈다. 그녀가 떠나고 유의 소지품들이 없어지기는 하였으나, 그보다 나는 그녀가 그녀의 아버지 '노아'의 이야기를 유에게 들려주었음에 초점을 두고 싶다. 노아는 불한당에 의해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동굴 안에 돌로 집 짓는 일을 더욱 몰두하게 된다. 동굴은 육체를 버리고 영혼이 영원히 살 집이 되었다. 그리고 그 동굴에서 지내게 된 유 역시 세상에서 느끼지 못한 안락함을 느낀다. 또한, 뻔뻔스럽게도 아내가 반죽음이 된 전 동거남을 유에게 데리고 왔을 때 유는 그를 동굴로 데리고 가 평안한 영면을 누리도록 해준다. 이야말로 아가페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동굴마저도 용암에 휩싸여 사라진다. 이것이 결말이다.


앞에서도 미리 일러두었듯이 이 작품은 내게 어려웠다. '왜 어려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어려우니까 어렵다.'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다행이라면, 소설 뒤의 '해설'에서 강유정 문학평론가는 "이해하기 쉬운 신비주의란 없다."(300p)라고 서리의 말을 옮겼다. 나의 생각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곳이 어디든>도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주의라고, 그래서 나만이 이 얽히고설킨 신비주의인 서사를 어려워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써 내려가고 있다. 차분히 <그곳이 어디든>의 서사를 정리하고 그 사이사이에 나의 생각이나 느낌을 토막토막 넣으면서 작가의 메시지와 닿을 수 있었다. "이 세상의 불의와 고통과 슬픔과 억울함은 당연한 것이 될 수 없고, 되어선 안 된다고, 불의한 것은 불의한 것이고, 억울한 것은 억울한 것이라고"(261p). 설사 안락을 누릴 수 있는 마지막 공간마저 사라지더라도. 그 공간이 한 때 존재했음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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