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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필방 26화

K가 보고 싶어(9)

환경을 위하여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

by 권수아

이 책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라는 제목을 접하고, 나는 이 책이 국내서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구보 씨'라는 인물명 때문이었다. '구보씨'의 어원은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그 이후로 최인훈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주인석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가 발표되었다. 그렇게 '구보씨' 표제 소설들은 계보를 이루었다. '구보씨'라는 인물명을 차용한 책들도 다양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구보씨'는 한국인을 지칭하는 일종의 인칭대명사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서문 이 책에 대하여'에서는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상황과 정보는 본래 미국인들을 위해 씌어진 것이었지만 번역 과정에서 한국적 상황과 정보로 바뀌었다.'(6p)라고 나와 있었다. 그러므로 제목도 한국적 상황과 정보로 바뀐 것들 중 하나라고 보면 되겠다. 그럼에도, 다만, 궁금한 점은 'STUFF'라는 원제가 어떻게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로 바뀌었냐는 것이다. 영어 사전을 찾아보니, 'Stuff'는 '것, 물건, 물질'을 뜻하는데 그 뜻 앞에 '비격식, 때로 못마땅함'이라고 쓰여있었다. 그러므로 원제와 한국 번역판의 제목에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겠고, 그 과정이 내가 궁금한 것이다.


표지를 넘기니 두 명의 지은이들과 한 명의 옮긴이에 대한 소개가 책날개에 적혀 있었다. 지은이 존 라이언의 소개 중 마지막 문장은 '그는 자동차를 갖고 있지 않지만 감자 튀김을 사랑하고 14켤레의 신발을 가지고 있다.'이며, 지은이 앨런 테인 더닝의 소개 중 마지막 문장은 '그러나 그가 허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커피를 마신다.'이다. 이렇게 솔직한 소개를 나는 이전에 본 적이 없다. 환경운동가이지만 거듭나야 하는 점들이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리니 오히려 더 호감이 간다. 한편, 옮긴이 고문영은 환경에 대해 무슨 행동을 하는지 나와 있지 않았다.


이 책은 '54킬로그램', '커피', '신문', '티셔츠', '신발', '자전거와 자동차', '컴퓨터', '햄버거', '감자 튀김', '콜라'라는 열 개의 꼭지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꼭지 제목인 '54킬로그램'은 '한국인들은 매일 약 54킬로그램 정도의 자원을 소비한다.'(11p)라는 문장에서 유래했다. 이 54킬로그램 정도의 자원들 중에는 커피·신문·티셔츠·신발·자전거와 자동차·컴퓨터·햄버거·감자 튀김·콜라가 속한다. 이 중에서 '커피'와 '신문'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커피'와 '신문'을 꼽은 이유는 이 책이 출판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논의를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 꼭지이기 때문이다.

커피의 원료는 원두이다. 책에서는 원두를 만들기 위해 환경이 얼마나 파괴되는지 설명한다. 하지만, 커피는 원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종이 가방, 분쇄기, 물, 설탕, 크림의 합작품이다. 그래서 커피 대신 녹차를 마시기를 이 책에서는 권하고 있다. 나는 이 '커피' 꼭지를 읽으면서 이 책이 1997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판되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느끼기에 요즘 커피 분야에서 염려하는 것들은 이 책에서 염려하는 것들과는 좀 다르다. 물론, 커피의 주재료인 원두 그 자체에 대한 의견은 비슷한데, 요즘이 더 비관적이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원두 다량 생산이 힘들어졌고, 저가커피 브랜드들도 몇 년 후에는 '아메리카노 한 잔에 1500원' 식의 판매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요즘 나오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또, 일회용 컵과 빨대도 문제 되고 있다. 스타벅스의 경우, 텀블러 사용 시 400원을 할인해줌으로써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기를 강권하고 있다. 그리고 스타벅스에서는 빨대도 플라스틱 빨대가 아닌 종이 빨대를 사용하고 있다. 종이 빨대도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박도 물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이 요즘에 출판된다면, 분명 일회용품에 관해서도 언급할 법하다. 더불어, 나도 텀블러 사용에 동참하고 있음을 적고 싶다.


신문의 경우도 커피와 마찬가지로 오래전에 출판되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일단, 요즘 종이 신문을 읽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요즘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로 뉴스를 접한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분명, 몇 년 전에는 도서관에 종이 신문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도서관에서도 전자 신문을 읽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종이 신문을 만들려면 이 책에서 언급하였듯이 나무를 펄프로 바꾸고 표백하고 인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자 신문을 읽을 때는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 종이 신문을 읽는 것과 전자 신문을 읽는 것 중 무엇이 더 친환경적이냐는 문제다. 내 생각에는 전자 신문이 더 친환경적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발전이란 늘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커피와 신문을 비롯한 열 개의 항목을 다루고, 결론과 부록으로 다다랐다. 부록에는 이 책이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서술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우리는 여러분이 이 책들을 친구들과 함께 돌려보기를 바란다.'(137p)라고 쓰여있었다. 책이 많이 팔리기를 바라는 욕심보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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