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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보고 싶어(8)

법학자가 바라보는 의적 <의적, 정의를 훔치다>

by 권수아 Mar 30. 2025

 지지난주에 내가 쓴 글의 제목은 'K가 보고 싶어(6)-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전>'이다. 그리고, 나는 요즘 '연관 있는 책 읽기'에 푹 빠져있는데 이것을 '고구마 줄기 캐기'라고 할 수 있겠다. 책 <홍길동전>이라는 고구마는 '의적'이라는 줄기를 타고 책 <의적, 정의를 훔치다>라는 다른 고구마에 닿아있었다. 이 책 <의적, 정의를 훔치다>는 K가 내게 준 책 <깐깐한 독서본능>의 '5. 인물·평전 편'의 여덟 권 중 한 권이기도 해서 'K가 보고 싶어' 시리즈에 어울리는 책이기도 했다. 그러한 두 가지 이유로 나는 <의적, 정의를 훔치다>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열 명의 의적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나는 로빈 후드, 풀란 데비, 홍길동에 대해 글을 써보겠다. 로빈 후드는 이 책의 가장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며, 나무위키에서는 로빈 후드를 두고 '서양판 홍길동'이라고 하였다. 풀란 데비는 이 책에서의 유일한 여성 의적이며 가장 최근 인물이다. 홍길동은 우리나라의 의적중 대표 인물이다. 이것들이 이 세 사람을 다루는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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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적의 대명사 로빈 후드'는 "로빈 후드 이야기는 바보에게나 좋다.(Tales of Robin Hood are good for fools.)"(11p)라는 말로 첫 문단을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홍길동전>을 '다시 읽어야 할 우리 고전'으로 다루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마 영국에는 영국인들의 자부심이기도 한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고전문학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는 로빈 후드를 혁명가가 아니라 기사의 시종으로서 기사 소유인 사냥터의 관리인이자 전시에는 궁수로서 용맹을 떨치기도 한 요먼이라고 설명한다. 그에게 있어 왕은 적이 아니라 경애의 대상이었으니, 그 점이 홍길동과 무척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로빈 후드와 홍길동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역사 속과 문학 속에 매우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더 읽을 거리 1'이라는 자리를 빌려 <로빈 후드의 무훈>이라는 모든 로빈 후드 이야기의 원형을 소개했다. 내가 '의적의 대명사 로빈 후드' 부분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저자가 글을 쓸 때 독자들이 당연히 로빈 후드 이야기를 알 것으로 생각했는지  줄거리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의 배려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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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의적의 여왕 풀란 데비'의 시작 부분을 읽자마자 의문점이 생겼다. 바로 186p에서 풀란 데비를 소개하는데 '1963?~2001'이라고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에 태어났으면 태어난 것이지 이 '?'는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풀란 데비라는 인물이 신화화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나의 생각과 정반대였다. '천민은 당시나 지금이나 자신의 나이도 모를 만큼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자라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194p) 그렇구나. 이 사람은 본인이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학대를 받으며 살았던 것이구나. 나는 죄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풀란 데비는 아버지의 재산을 빼앗은 숙부를 보았고, 열한 살에 자기보다 서른 살이나 많은 남자와 불행한 결혼을 한다. 그리고 자신을 붙잡은 산적 두목에게도, 마을 지주들에게도 성폭행을 당한다. 후에, 의적의 여왕이 된 풀란 데비는 자신을 집단 성폭행했던 마을 지주들을 모두 죽이고, 부자 상인과 높은 신분의 카스트 가족을 공격한다. 이런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 <벤디트 퀸>으로도 만들어졌다. 책에서는 이 영화가 인도와 영국에서 상영이 금지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나는 매우 놀랐다. 그런 일이 벌어진 때가 1994년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였기 때문이다. 인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영국에서도 1994년에 정치적 이유로 상영이 금지된 영화가 있다는 것은 놀랄 법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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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홍길동과 조선의 의적들'이었다. 여기서는 홍길동전과 관련한 역사를 많이 다루었다. 저자는 대부분의 국문학자들이 <홍길동>의 모델을 연산군 대인 1500년경의 인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당시 임금이 연산군이 아닌 세종으로 등장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왕을 긍정하고 복종한 홍길동의 이미지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폭군으로 낙인찍힌 연산군보다 존경받는 세종이 등장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 지지난주 글의 주제도서였던 <홍길동전>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읽는 작품 해설'에서도 이와 관련한 부분이 있다. <홍길동전>의 시대 배경세종 시대로 설정했기 때문에 훈련도감의 포수가 등장한다든지 길동에게 벼 일천 석을 내준 선혜청이라든지 하는 부분은 시대에 맞게 고쳐 썼다는 것이다. 더불어 <의적, 정의 훔치다>의 '홍길동과 조선의 의적들'에서는 그 소제목처럼 홍길동을 비롯한 다른 '조선의 의적들'도 언급되었다. 장길산과 임꺽정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의적소설인 <전우치전>과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까지도 언급되었다.


 이렇게 나는 의적들의 이야기를 즐겁게 읽었다. 다만, 궁금했던 점은 왜 법학자인 박홍규가 의적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냐는 것이었다. 나는 '결론을 대신하며'에 가서야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의적을 두고 '법이나 지배계급에 의해서는 '범죄자'로 분류되지만, 민중에 의해서는 영웅, 수호자, 정의의 투사, 심지어는 해방의 지도자로 평가되는 도둑들'(282p)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여, 법만으로는 규정되지 않는 존재들이 있고, 의적이 그런 경우라는 것이다. 그런 존재들에 대한 관심은 법학자가 가질만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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