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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보고 싶어(6)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전>

by 권수아 Mar 16. 2025

 내가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서필방(書筆房)'을 연재하는 것은 인생을 돌아보며 읽은 책들을 다시 읽어본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리고 이 글은 'K가 보고 싶어'의 연재물로써, 여기서 K가 내게 준 책 <깐깐한 독서본능>의 '고구마 줄기 캐기'('고구마 줄기 캐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싶으신 분들은 'K가 보고 싶어(3)-책에 관한 책 <깐깐한 독서본능>'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두 항목의 공통 사항이 되는 책이 있으니, <구운몽>과 <홍길동전>이다. <구운몽>은 이미 'K가 보고 싶어(2)-쌀밥 같은 고전 <구운몽>'에서 다룬 적이 있으니, 남은 책은 <홍길동전>이다. 특히나 <홍길동전>은 동생이 초등학생 때 논술 공부를 하면서 사둔 책이다. <홍길동전>의 판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내가 선택한 판본은 다음과 같다. 캐릭터 어피치로 가린 것은 내 동생의 이름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사실, 이 책을 선택하고 두 가지 걱정이 생겼다. 일단은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이 <홍길동전>으로 새로운 나만의 이야기를 서술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릴 때 분량을 A4 한 페이지가 조금 넘도록 쓰는데(왜냐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이 정도 분량이 다른 사람들이 읽기에 적절한 분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분량을 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그 걱정이 사라졌다. 내가 <홍길동전>의 큰 줄기들만을 기억했지, 세부 내용은 잘 기억하지 못다는 것을 깨달아서였다. 그래서 자신감을 갖고 <홍길동전>을 다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홍길동전>은 홍 대감이 대낮에 청룡이 달려드는 꿈을 꿈으로써 시작된다. 여기서 눈여겨볼 단어는 '대낮'과 '청룡'이다. 홍 대감은 꿈에서 깨어 정실인 유씨 부인과 자리에 들려하나 때가 인지라 거절당하는 바람에 여종인 춘섬과 자리에 든다. 그리고 청룡 꿈은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범할 것임을 암시한다. 우리 엄마도 우리 자매를 임신하셨을 때 나름의 태몽을 꾸셨다고 한다. 태몽은 '동서'까지는 모르겠고, '고금'에 있어 한국인의 문화 같기도 하다. 하지만, 천한 여종의 몸에서 태어난 범한 아이는 어떻게 보면 비극적이었다. 그 유명한 사자성어 '호부호형'도 못하였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다른 첩 곡산댁의 만행까지 더해져 결국 길동이 길을 떠때는 열 살 때였다. 젊다 못해 어릴 때였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많이 놀랐다. 아무튼, 이로써 더 큰 세계로의 모험이 시작된다.


 길동이 도착한 곳은 도적의 소굴이었다. 거기서 길동은 도적인 무통과 마숙을 만는데 '세 사람은' 흰 말의 피를 나누어 마시며 '굳게 맹세하였다'. 여기서 생각나는 건 바로 <삼국지>의 '도원결의'. <삼국지>에서도 유비와 관우와 장비 '그 세 사람은' 복숭아밭에서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며 '굳게 맹세하였'. 그리고 '활빈당'이라는 단어도 주목할 만하다. '활빈당'이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 뜻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길동이 도적들을 다 모아 만든 무리의 이름 '활빈당(活貧黨)'은 '살 활'에 '가난할 빈', '무리 당'을 써서 '가난한 백성을 돕는 무리'라는 뜻이다. 활빈당은 백성을 괴롭히는 벼슬아치나 양반들을 다스고 재물을 백성들에게 되돌려주는 데에 힘을 모다. 그 뜻은 좋으나, 임금에게는 충신이었을 포도대장을 놀리고 임금에게마저 허수아비로 만든 여덟 길동으로 대응하는 장면에서는 '너무 심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당시 독자들이었을 민중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국가에 대해 품었던 실망을 길동이 대신 풀어주었다고 해석해도 될까.


 결국 길동은 조선을 떠나 율도국으로 다. 길동의 뜻을 이루기엔 그 당시 조선이 협소했을 것이다. 더불어 길동은 요괴들을 무찌름으로써 백룡의 딸과 조철의 딸을 한꺼번에 부인으로 얻다. 나는 또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로, 한 남자와 여럿 여자의 결혼은 <구운몽>에서도 나오는 모티프다. 이를 다시 말하면, '일부다처제'이다. 남성 우월주의가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둘째로, '한꺼번에' 부인을 얻음으로 길동의 괴로움의 원인이었던 '서자' 문제가 애초에 없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길동은 어린 시절 자신과 함께 한 부모님들과 형에게 보답다. 그리고 사치에 빠진 율도 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새 나라를 '평안한 남쪽 나라'라는 뜻의 '안남국(安南國)'으로 칭다. 또, 엄청난 양의 선물을 조선에 보다. 이로써 길동은 자신의 안팎으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고 두 아내와 함께 학이 되어 하늘로 승천했다. 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신화적 요소마저도 엿보다.


 이렇게 나는 <홍길동전>의 줄거리와 나의 생각을 번갈아가며 쓰면서 이 작품이 예나 지금이나 인기 많은 작품인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이 옳게 돌아가는 걸 바라는 마음은 본능에 가깝겠고, <홍길동전>이 그걸 충족시켜 주기에 그러하겠다. 거기에 덧붙여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주인공 홍길동은 요즘 말로는 액션 배우 뺨치는 인물이 아니었겠는가. 그렇게 홍길동은 몇 백 년이 지나도록 우리들의 마음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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