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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Dec 18. 2024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남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인생의 이해

주말에 대학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예전 있었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그 당시 나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지금 다시 판단하라고 해도 동일한 결정을 했을 테지만,
남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 사건이다.

#1. 과외 학생의 거짓 알리바이 대주기
대학시절, 6촌 언니의 추천으로 미술을 전공하는
예고 여학생 2명의 그룹과외를 하게 되었다.
그 과외를 2달 반 하면 한 학기 등록금을 맞출 수 있었지만
솔직히 그 과외가 썩 내키지는 않았다.
일단 과외 학생 집이 학교와 집에서 너~~~무 멀었다.
과외 2시간을 위해 가는데 2시간, 집에 오는데 2시간이
소요됐다.
중간에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붕어빵이나 어묵으로 간단히 요기를 때웠다.
모름지기 과외란 슬리퍼 끌고 갈 수 있는 거리에서 해야
이득인데 이렇게 길거리에서 시간 쓰고 이 과외를 계속 유지하는 게 맞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나를 고민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학생들에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항상 흐린 눈과 한숨이 장착되어 있었고,
숙제를 제대로 해온 적이 없었다.
나는 지하철에서 과외 집으로 가는 내내 공부를 했고
목이 아프도록 설명을 하지만
학생들은 공부의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각자의 한숨으로 진행되던 과외수업이
이제 막 2주? 3주 차가 되었을 무렵,
한 학생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 이번 주 토요일에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요. 엄마가 외출을 못 하게 해서요. 혹시 선생님이 엄마한테 저랑 같이 영화 보러 간다고 이야기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중요한 약속이라서요. 한 번만 부탁 들어주시면 앞으로 숙제도 열심히 할게요."

엄마가 나를 믿지 못해 누군가의 증언이 필요한 상황,
엄마가 가지 못 하게 하는데 거짓말을 해서라도
나가고 싶은 마음 등 그 어느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학생의 부탁은 22년 살면서
처음 들어본 신박한 접근 방식이었다.
나에게 거짓말을 해달라고?

부탁을 들어줄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그 학생을 몇 개월 가르쳤고 그래서
어느 정도 정이 쌓였으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아직 라포가 형성되지 않은 고작 2~3주의 기간은
나의 상식과 가치관을 거스르는 그 부탁을 들어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엄마는
"아유, 애가 얼마나 나가고 싶으면 너한테 그러겠니.
눈 딱 감고 한번 해 주렴. 또 모르잖아. 이 일을 계기로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잖아."

엄마까지 그렇게까지 말을 하시니 학생 엄마에게
말하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하지만 학생과의 좋은 관계가 딱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고,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나에게 거짓말은 용납할 수 없는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결국 그 학생의  부탁은 거절했다.

그리고 나는 한 달 만에 과외에서 잘렸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 학생들이 엄마에게 선생님 스타일이 너무 안 맞아서 공부하기 싫다고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 예상치 못 하게 과외를 잘려 당황스러웠고,
당장 돈이 아쉬웠지만 마음은 후련했다.
내가 먼저 그만둔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개해 준 사촌 언니에 대한 미안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본 엄마는 나더러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했지만, 마음에 안 내키는 일은 억지로 할 수 없었다. 나는 곧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그 일은  빨리 잊혔다.

시간이 흘러 과외를 많이 해 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차피 공부하는 애들은 정해져 있기에
공부를 가르치는 집, 놀다 가는 집이 따로 있다고 했다.
놀다가는 집은 2시간 중 1시간 30분을 놀기도 한다고 ㅎ
한마디로 그 학생들은 내가 굳이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칠 필요가 없는 아이들이었다.
오히려 친구처럼 언니처럼 친하게 지내면서 고민 상담도
해주고 노는 게 너무 눈치 보이면 가끔 공부하고 그 정도? 그랬다면 1~2년은 편하게 돈을 벌었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들은 그런 과외 샘을 바랐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성향도 아니고 (여기서도 드러나는 대문자 T)
그 어떤 감정의 교류나 친분도 없던 관계였기에 그런 노력조차 무의미하게 생각했다.

융통성이 없던, 원리원칙이 중요하던, FM이던, T이든 간에 지금에라도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내 모습을 이루었음을 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때도
대부분 나와 비슷하게 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내 주변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기에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옳고 그름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다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나이가 되고 보니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내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신박한 생각을 했던 그 학생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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