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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Mar 18. 2023

이제는 좀 까칠해질 필요도 있다

인생의 이해


30대까지만 해도 나는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배려하는 성향이었다. 

감정을 절제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잘 참으며 묵묵하게 버텼다. 

직장생활을 하며 터득한 노하우였는지 

사람한테 싫은 소리 잘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분위기가 

싸해질 것 같거나 상대가 민망할 것 

같다는 것을 먼저 고려해서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 

이러한 성향은 '믿음직한 후배', 

'함께 일하기 좋은 동료'라는 평을 

듣게 했고 협력업체로부터는 때로 

'천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불만을 쉽게 토로하거나 특히 회사에서 

감정의 불편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동료를 보면 미성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돌아올 불이익이 뻔한데 그걸 못 참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내가 그때 

조금 까칠해도 되었는데, 좀 더 

내 목소리를 내도 되었는데 

생각되는 순간이 떠오른다.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해서 후회되었던 순간.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여행에세이 <버리지 않고 떠나기>와 

기획서적 <기획의 기술>을 출간하고 이제 막 강의를 시작할 때였다. 

마침 한 독서모임에서 일본으로 

단체여행을 가는데 선상에서 저자특강을 해줄 수 있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선상특강도 신선했고, 

강의료로 여행경비를 대주는 조건이어서 나에게는 여행도 가고 강의도 하는 

그야말로 1석2조였다. 이번 기회에 가족 여행을 가자 싶어서 엄마, 이모, 8개월 된 딸까지 함께 했다.


일본으로 가는 배는 저녁 6시 출발이고 

저자특강은 저녁 식사 이후였다. 

아이는 엄마와 이모가 번갈아가며 

업어주셔서 부담 없이 임할 수 있었다. 

저자특강은 사회자가 전체 진행을 맡고 

나와 2~3명의 패널이 참여하는 패널토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나는 수원에 있었고, 나에게 저자특강을 의뢰한 곳은 대전의 독서모임이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멀어 사전 미팅은 어려웠다. 행사 시작 몇십 분 전에 간단히 인사하며 의견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사전미팅 때 사회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저자특강이 시작되었는데, 사회자가 내 이름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는지 나를 자꾸 '김희경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순간 '아... 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 타이밍에 이걸 바로 잡아야 할지 난감했다. 그 실수를 지적하면 사회자가 민망할 것 같고 하지만 자꾸 내 이름을 잘 못 부르니 나는 불편하고...

패널들은 나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니 거기에 끊임없이 대답을 해야 하고 머릿속은 복잡하면서 내 마음은 계속 오락가락하였다. 결국 끼어들 타이밍을 놓친 나는 내 마음이 조금 불편한 것을 택했고 1시간 넘는 저자특강 내내 나는 '김희영작가'가 아닌 '김희경작가'로 불렸다.


그때의 상황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쉬운 이유는 당시 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되었고, 이후 내가 강의하는 모습을 가족들이 볼 기회는 더 이상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인을 향한 지나친 배려심이 나에게 

가져온 것은 아쉬움이었다. 

내가 까칠하지 않고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선택한 것은 나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것이 되니 말이다.

이제는 나를 얽매였던 '좋은 사람 되기'에서 벗어나 나에게 좀 더 솔직하고 싶다. 좀 더 까칠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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