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껏 별 무리 없이 T의 인생을 살아왔던 나. 어쩌다 F와 마주하게 되면 '아, 나와 다른 성향이구나' 빨리 파악한 후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뭐랄까 부담스럽기도 하고 기빨리기도 하고, 암튼 나와 결이 다르고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F의 성향도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 나에게 울림을 주는 F가 있었으니 바로 아이의 피아노 선생님.
기본적으로 음성이 솔~톤에다가 나에게 보내는 수업 피드백은 카톡에도 처음엔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신랑한테 보내는 카톡보다 더욱 많은 하트와 이모티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관념이 정확하지 않은 치명적인 단점이.... 분명 토요일 오전에 수업이 가능하다고 하셔서 등록을 했건만 실제 토요일 오전에 수업하는 날은 절반 정도? 그거야 나도 토요일 오전에 약속이 있어 변경할 때도 있으니 그려려니 했는데... 이렇게 수업 스케줄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아이가 학원에 갔는데 선생님이 늦게 오셔서 기다리거나 아예 수업 자체를 잊고 문이 잠겨있어 되돌아온 경우도 여러 차례였다. 보강 스케줄을 잡는데 갑자기 연락이 뚝 끊겨 3일 동안 기다리기도 했다. 수업료 결제는 내가 거의 먼저 챙기는...? 이건 뭐지 ㅋㅋㅋ
엄마가 아닌 보통의 나라면 이렇게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유형은 신뢰할 수 없다며 멀리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감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에게 없는 것을 이 선생님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무한칭찬과 끊임없는 격려였다. 쌍따봉 척척 올리며 "우리 00, 진짜 잘한다", "최고야" 하는 말에서, 수업 끝나고 헤어질 때도 안아주는 모습에서,가식이 아닌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번은 수업 끝나기 5분 전에 미리 학원으로 데리러 갔는데 박수소리와 함께 피아노방에서 솔 톤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피아니스트 00님이 이제 무대로 나오십니다"라고...
선생님 덕분인지 처음에는 "어려워요", "못하겠어요", "힘들어요"를 입에 달았던 아이가 "저 이제 잘하죠?", "이것도 해볼게요"라며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아이에게 해주셨던 말은 이때껏 내가 내 아이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 작은 발전도 알아차리고 인정해 주는 말,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말... 난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유튜브에서 T의 연애, F의 연애라는 짧은 영상을 보았다. 예전의 나라면 T의 연애는 익숙한 대화법이고, F는 신선하다고 여기며 재미있네~ 그러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면 F의 대화에서 배울 점이 있었다. 특히 회사에서 연락이 온 상황이에서였다. 남자에게 회사 카톡이 왔는데 선임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으니 그 프로젝트를 대신 맡아달라는 팀장의 메시지였다. 내가 그 상황이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회사 일이 다 그렇지. 어쩌겠어. 상사가 시키면 해야지."
(스트레스받는다고 하면) "직장 생활 원데이 투데이하는 거 아니잖아.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겠어."
영상에서 나온 F유형 여자의 반응은 나와는 판이하게 달랐고 그래서 신박 그 자체였다.
"오빠가 일을 진짜 잘하긴 하나 보다"
"저번에 PT도 그렇고 중요한 건 다 오빠한테 맡기잖아"
"내가 봤을 땐 오빠가 에이스야"
"그냥 한번 해줘"
"오빠가 한 번 해줘"
"그래 에이스 아니면 누가 해"
"멋있다"
칭찬은 고래도 한다는데 머릿속으로 익히 아는 말이지만 T의 인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입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아이를 위해 F의 말을 따라 해보기로 마음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