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축하하는 것보다 위로하는 것이 쉽다고 말한다. 나는 전세살이 하는데 친구나 형제가 먼저 집을 샀을 경우, 나는 매번 진급에서 누락되는데 후배가 특진했을 경우 부러움과 자괴감을 억누르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을 먼저 겪었기에 위로가 쉽다고 생각했다.
가깝게 지내던 후배가 있었다. 최근 5년 사이 참석했던 마지막 결혼식이 그 후배 결혼식이었다. 청첩장을 직접 받았고 신혼집을 어디에 구했는지 알고 결혼식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 소식을 들을 만큼의 사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초등입학을 준비하기 위한 육아휴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ADHD 아이의 폭풍 같은 적응기를 보내느라 내 코가 석자였기에 그 후배와의 연락은 자연스레 뜸해졌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었을 때 오랜만에 카톡 프로필을 보니 후배의 프로필에 아기 사진이 있었다. 그제야 출산을 하고 백일쯤 되었겠구나 생각이 들면서 잘 지냈냐, 아기는 잘 크고 있냐고 안부 톡을 보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했고 상간녀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올 줄이야!
시기를 따져보니 만삭 또는 출산 직후 변호사와 상담하고 법원 다니며 처리했을 것 같았다. 신생아 키우는 것도 멘붕인데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혼, 소송은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영역이라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에 다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00 하면 좋을까요?"라고 고민을 털어놓은 것도 아니어서, 어쭙잖은 위로는 오히려 마상이 될 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후배가 물어본 게 있어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었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알려도 하고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에 따라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좋을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상대가 겪어보지 않는 내가 처해 있을 때, '내가 얼마나 힘든지 넌 겪어보지 않았으니 모르잖아' 그 어면 말도 위안이 되지 않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산과 시험관 시술을 반복하는데 자연임신, 자연분만한 친구가 해주는 힘내라, 잘 될 거야 등등의 말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를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게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내가 받았던 가장 큰 위안은 눈물 홀릴 때 별말 없이 건네준 휴지나 손수건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옥 같은 터널을 거쳐 괜찮아졌을 때 아무렇지 않게 예전처럼 대해주는 것이 좋았다.
다시 1년 넘는 시간이 흘러 복직했고 오랜만에 회사에서 후배를 만났다. 회사 점심시간에 만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씩씩한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정말 괜찮은 것인지 괜찮은 척하는 것인지.
하지만 나와의 관계는 서로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아는 그런 찐 우정이 아니라 회사에서 만난 선후배이기에 위로보단 실질적인 정보가 더 도움이 되는지 등등. 아직은 물어보지 않았다. 남이 나에게 해주기 원하는 대로 대했지만 그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위로란 여전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