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봐야 3층 정도의 건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산타클라라의 골목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오전에 쨍했던 하늘이 오후들어 어두워졌다. 구름 낀 하늘은 산타클라라의 잿빛 건물들 틈으로 흘러들어 도시의 분위기를 한층 더 차분하게 가라 앉혔다. 하루 사이에 이미 산타클라라의 야경과 체 게바라 기념관을 둘러봤고 다음날 이동을 위한 비아술 예약도 해두었다. 북쪽에 몇 개의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더 있었고 남쪽에도 대학교가 있었지만 별로 흥미를 끄는 곳들은 아니었다. 산타클라라의 남은 오후 시간은 산타클라라의 작은 시내 거리를 복습이라도 하듯이 되짚어 돌아다니면서 전날 방문했던식당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씩 더 이용하고 조금 더 꼼꼼하게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채웠다.
하바나와 달리 산타클라라에는 외국인이 흔치 않다. 더군다나 나와 같은 동양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철저하게 이방인인 나를 이곳 사람들은 전혀 낯설게 대하지 않았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다가와 말을 건네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중년 남성은 자신이 유럽 어딘가에 살고 있는데 몇 년 만에 자기 부모님을 방문하러 왔다고 묻지도 않은 자기 이야기를 한참 풀어놓기도 했다.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한 그에게 어쩌면 나 같은 여행객이 반가웠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이방인으로서의 동질감이었을까. 내가 사진을 찍는다 한들 그 사진을 받아볼 방법이 없는데도 카메라 앞에서 스스럼없이 포즈를 취해주던 사람들도 많았다. 카메라의 뷰 파인더를 통해 그들과 아이컨택을 할 때마다 그들의 편안하게 열린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달 파크의 어느 벤치에 앉아 있던 노인들은 멀리서 내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깔깔 대더니 어느 분은 오늘자 신문을 펼쳐 보여주었고 어떤 이는 시가를 멋있게 물고 자기만의 포즈를 잡은 후 찍어 보라고 나섰다. 저마다 깊게 파여 주름진 얼굴에는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행복해 보였다. 공원에는 노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노새가 끄는 마차가 공원 둘레길을 트랙 삼아 돌고 있었는데 이 마차의 손님들은 예닐곱 살의 어린아이들이었다. 작은 마차에 손님을 가득 싣고 공원 한 바퀴를 도는, 우스꽝스러운 치장을 한 노새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비달 파크를 도는 노새 마차.
시가를 파는 노인.
경찰과 군인. 옆쪽에 오토바이 택시는 산타클라라의 시그니처중 하나다.
쇼핑거리를 지나던 아주머니가 카메라를 보더니 엄지 척.
여장 남자인지, 남장 여자인지.
멋쟁이 노새.
아저씨 혹시 탑승인원 초과 아닌가요?
산타클라라의 시내버스.
친구들.
시가를 피우는 할아버지.
카메라를 보고는 이렇게 포즈를 잡으신다.
신문을 펼쳐 보이시는데, 저, 저는 스페인어 까막눈이걸랑요.
저런 망사 스타킹은 쿠바 자체 생산품일까요?
호텔 앞에 줄 서 있는 오토바이 택시. 성조기 티를 입고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아이러니컬 하다
코펠리아.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다.
전날 들렸던 pepe식당에서 어제와는 다른 메뉴를 시켜서 먹고 숙소로 들어갔다. 며칠간 쉴 새 없이 돌아다닌 후유증으로 몹시 피곤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서너 시간 잠을 청했다. 저녁 8시쯤 잠에서 깨니 다시 출출했다. Dinos Pizza만 그 시간에 문을 열고 있었다. 피자와 음료수를 시켜 먹고 혹시 뭐가 있을까 싶어 동네 한 바퀴를 다시 돌았으나 역시 별게 없다. 도서관 옆 건물에서 밴드 소리가 들려서 나중에 맵스미로 체크해 보니 그곳이 산타클라라의 유흥 클럽이었던 모양이다. 십 년만 더 젊고 초급 정도의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상태였다면 한 번 노크해 봤을까?
그밖에 산타클라라의 밤 풍경은 적막하기만 했다.
저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남성.
퇴근하는 코펠리아 직원.
카메라를 응시하는 노인.
길가에서 맥주를 드링킹하는 사람들.
지금도 의문이다. 이 집은 속옷 가게였을까?
부서진 채 방치된 건물 2층.
숙소의 루프탑에서 바라 본 거리 모습.학생들이 하교중이다.
산타클라라의 거리는 깨끗하고, 쓸쓸하다.
루프탑에서 눈이 마주친 옆 집 아저씨가 장식용 도마뱀을 찍어보라고 굳이 이 포즈를 취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