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잠에서 깼다. 조금 서늘한 새벽 기운이 몸을 감싼다. 건물 옥상에 올라가 동네를 둘러봤다. 리어카로 뭔가를 집집마다 배달하는 아저씨와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자전거 한대. 이 잿빛 도시는 여전히 곤한 잠에 취해 있었다.방으로 돌아와 흩어졌던 짐을 한자리에 모으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했다. 오늘은 세계문화유산인 트리니다드로 떠나는 날이다. 시엔퓨에고스를 거쳐서 백 킬로가량을 비아술로 이동한다. 버스요금은 8 cuc이다. 우리나라 시외버스 요금과 얼추 비슷하다.
숙소에서 조금 빨리 나왔다. 처음 비아술을 타는 거라 여유 있게 시간 계산을 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시간이 남으면 터미널 주변의 사람들을 찍어볼 생각이었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묻어 나오는 아련함과 그리움, 초조함 등의 감정들을 포착하고 싶었다.
마차를 잡아 탔다. 마차 가격은 여전히’1딸라!'. 내가 혼자 정한 그 가격에 마부 한 분이 마지못해 응해 주었다. 하루만에 마차가 익숙해져서 전날과 같은 감흥이 없었다. 첫 경험의 설렘은 늘 이렇게 광속으로 과거를 향해 달아나 버린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 탑승 때까지 한 시간 반이 남아 있었다. 캐리어를 짐으로 맡겼다. 1 cuc을 내고 맡기면 번호표를 준다. 버스에서 내릴 때 이 번호표와 짐을 맞바꾸는 것이다.
아빠를 배웅하러 나왔나 보다.
버스 드라이버.
쿠바의 시외버스들.
산타클라라의 시그니처인 오토바이 택시.
일본의 게다가 연상되는 옷차림.
렌즈를 향해 웃음지으며 포즈를 취해준 남자.
남자의 독특한 분위기와 사선의 아케이드 기둥이 묘한 어울림을 만들어 낸다.
기어가 없는 자전거.
쇼핑몰 바깥의 창구 직원.
터미널 앞 쇼핑몰.
쇼핑몰 아케이드의 녹색 기둥.
길에서 자동차를 정비하는 자동차 오너.
터미널 앞 시내버스 정류장.
유턴하는 오토바이 택시.
나시티 커플.
마차.
작은 노점 식당.
동쪽으로 난 터미널 창으로 빛이 쏟아졌다. 날이 흐려서 구름에 분산된 빛이 사진 찍기에 오히려 좋았다. 대합실은 벌써부터 사람들로 빼곡했다. 대합실 벤치에 기대앉은 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들이 대합실의 마른 공기 사이로 힘없이 흩어졌다. 차가 한 대 들어올 때마다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고 신문이나 핸드폰을 다시 들여다본다. 사람이 많았지만 조용하고 낮게 가라앉은 대합실 공기는 마침내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한 승객들의 발길질에 잠시 풀썩거릴 뿐, 이내 차갑고 메마른 콘크리트 바닥 위로 다시 힘없이 떨어졌다. 카메라로 대합실 풍경과 몇몇 개성 있는 인물들을 스케치한 후 나는 대합실 밖으로 나왔다.
아직 출근 시간인 터미널 앞 도로는 분주했다. 길 건너편에 현대적인 느낌의 쇼핑몰이 보였다. 들어가 보니 각종 생필품부터 가전제품까지 다양한 상품이 망라되어 있었다. 대부분 중국산 B급 제품들이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이 제품들을 과연 누가 사는 걸까? 쿠바의 1인당 국민 소득은 2013년 기준으로 만 오천 달러를 찍은 후 베네수엘라의 석유원조가 끊기면서 최근 반토막이 났다. 그런데 국민 1인당 평균 월급은 25불 정도. 의사의 수입도 70불 정도 밖에 안된다. 국가가 생산과 분배를 도맡아서 하는 공산주의 경제구조의 특성 때문에 이런 괴리가 생기는데 최근 시장경제가 속속 도입되면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소득이 폭증하여 공산주의 체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빈부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 2백만 가량의 쿠바인들이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이 매년 수십억 달러를 쿠바의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있다고 한다. 쿠바 인구가 천 백만이니 상당히 많은 쿠바인들이 해외송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외소득이 아마도 이런 쇼핑몰에서 소비가 되는 듯하다.
터미널 바깥 구경을 한참 하고 다시 터미널 대합실로 돌아왔다. 트리니다드로 향하는 버스가 이미 정류장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전날 발급받은 버스표를 챙겨 들고 버스에 오르는 줄 뒤에 섰다. 이렇게 나는 혁명의 도시 산타클라라와 작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