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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 Dec 07. 2020

트리니다드

세계문화유산

트리니다드 까사.

두 시간여의 시간을 달려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다. 시엔퓨에고스를 거쳐 오는 경로라서 거리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버스는 쿠바의 시골길을 줄곧 달려왔다. 마치 수십 년 전의 흑백 사진 같았던 버스 창 밖풍경을 바라보면서 문득 젤소미나와 잠파노가 달리고 걷던 1950년대의 이탈리아 시골 풍경이 떠올랐고 귓가에는 니노 로타의 선율이 들리는 듯했다. 시엔퓨에고스를 떠난 버스 안에서 잠시 졸고 있다가 갑자기 우당탕탕 하는 충격에 잠에서 깼다. 차가 이미 트리니다드로 접어들고 있었다. 트리니다드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자갈길을 달리면서 그 요철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곧 시내 중심에 있는 작은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밖으로 걸어 나오자마자 저마다 까사를 홍보하는 사진첩을 들고 호객을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중 제일 먼저 만난 아주머니와 흥정을 시작했다. 20 cuc이라고 했던 까사의 가격을 13 cuc까지 낮춘 후 그곳에 투숙하기로 했다. 까사는 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이층 집이었고 내 방은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있었다. 호객을 했던 아주머니는 집주인이 아니었다. 아마도 손님을 물고 오는 대신에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 것 같았다. 숙박 명부에 인적사항을 적고 여권 사본을 준 후 방 열쇠를 받았다. 짐을 방 안에 던져 놓고 바로 집 밖으로 나왔다. 트리니다드에는 단 하루만 머물기 때문에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했다.

이분이 까사 호객꾼.
트리니다드의 시그니처인 돌바닥.
트리니다드 버스터미널.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집들과 돌바닥.
역시 관광의 도시답게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점심때까지 날이 여전히 흐렸다. 트리니다드는 인구 7만 가량의 소도시다.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제적인 관광지다. 시내의 반경이 약 3킬로 정도 되는 크기라서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면 웬만한 곳은 다 돌아볼 수 있다. 일단 나는 트리니다드의 랜드마크인 칸테로의 집(혁명역사박물관)과 반대쪽인 서쪽길로 내려갔다. 트리니다드의 지형은 동고서저다. 동쪽 언덕 쪽에 유명한 식당이나 카페, 풍물시장, 광장, 전망대 등이 몰려 있고 서남쪽으로 일반 주거지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여서 그런지 산타클라라와는 달리 외벽이 말끔하게 색칠되어 있는 건물들이 많았다. 트리니다드의 시그니처인 자갈길은 윗동네에 주로 깔려 있었고 완전히 평지인 아랫동네의 길들은 보통의 포장길이었다. 아랫동네는 아마도 나중에 도시가 확장되어 형성된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자갈길은 보기보다 더 거칠었다. 유럽에 흔히 있는 돌바닥들은 포장된 도로처럼 평탄화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돌바닥은 꽤 울퉁불퉁해서 차가 다니기에도, 사람이 걷기에도 편안하지가 않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이것의 원형을 바꾸기는 것은 힘든 모양이다.

트리니다드엔 술집도 많다.
쿠바의 치안이 나쁜가? 이곳 집들엔 유난히 쇠창살이 많다.
트리니다드 골목 풍경.
가운데 큰 돌은 일종의 중앙 차선일까?
애들 공을 잠시 맡아 주시는  할머니.
트리니다드 골목 풍경.
달구지.
칸테로의 집. 트리니다드 혁명역사박물관 전망대.
스페인 양식 건축물들의 높은 층고는 정말 마음에 든다.
트리니다드 만남의 광장 옆 식당.
풍물시장.
레깅스 아주머니들.
어느 식당. 뒤로 보이는 중정이 멋지다.
차가 다니기에 이 돌바닥은...
오후 들어 해가 나왔다.



윗동네를 벗어나서 아래쪽으로 접어들 때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왔다. 트리니다드의 집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아랫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작은 카페테리아에 들어가 피자와 음료수를 시켜 먹었다. 1 cuc이다. 윗동네와 아랫동네의 물가가 확연하게 틀리다. 이날이 일요일이었는데 길거리에는 작은 좌판을 펼치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산국가에 사는 이들에게 장사는 생계라기보다는 용돈 벌이 같은 느낌이었다. 길거리 장사꾼 누구도 호객을 하지는 않는다. 길게 이어진 골목의 끝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관광객으로 보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트리니다드의 주요 유산들은 주로 마요르 광장과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윗동네에 포진해 있다. 윗동네에는 많은 스페인풍의 저택들이 카페와 갤러리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때 전 세계에 설탕을 공급하던 제분소가 70여 개에 이르렀고 그 설탕 생산의 달콤한 열매를 독차지하던 대지주들과 뜨거운 태양 아래서 사탕수수를 잘라내며 쓰러져 갔을 노예들. 그 불평등과 착취의 역사는 고스란히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뉜 채로 현재에 이르는 것이다. 대지주들이 노예들의 피땀으로 일군 부를 흥청망청 쓰고 즐겼던 바로 그 공간은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라이브 음악과 맥주를 즐기며 흥겨워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이 나라에 쿠바 독립 전쟁이 없었다면, 또 바티스타의 독재에 맞선 쿠바 혁명이 없었다면 이들 민중의 삶은 어땠을까? 우리에게 4.19나 5.18 그리고 6.10 항쟁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러나 자본주의가 스며들어 빈부격차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쿠바의 현재나 빈부격차가 극대화되어 있는 우리의 사정을 보면 과연 민중들이 이기고 있는 것일까에 반문을 하게 된다. 하지만 It ain't over till it's over. 세상은 그래도 점점 더 좋은 쪽으로, 변증법적인 변화와 발전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트리니다드에 와서 윗동네가 아 아랫동네를 먼저 보고 싶었다. 내가 여행에서 보고 싶은 것은 그저 화려하고 찬란한 그 동네의 어트랙션들이 아니다. 그냥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이 우리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거기서 오는 연대감과 안도감. 공감. 그로부터 나에게로 전해지는 따뜻한 위로. 아랫동네를 보는 동안 먹구름이 다 걷혀서 하늘이 파랗게 드러났다. 카릴로 광장에서 잠시 쉬면서 인터넷 서핑을 하고 마요르 광장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손 잡고 걸어가는 늙은 부부. 스위트 그레이.
트리니다드의 진정한 시그니처는 컬러다.
색깔이 좋아서 한 컷.
오래된 스패니쉬 기와가 새로 칠한 처마와 벽과 반전미를 선사한다.
짙은 구름 사이로 고개를 잠시 내민 햇살이 골목을 채운다.
트리니다드의 학생들.
대낮에 불 켜진 가로등과 포스 넘치는 셰프.
풀을 이어서 뭔가를 만드는 배불뚝이 아저씨.
강아지와 눈이 마주쳐 한 컷.
가게에서 흥정하는 아저씨.
이 사람들의 장사 방법은 세월아 네월아다.
저 신발들을 어떻게 구했을까?
피자 한 판 시켜 먹었다.
병아리 장수.
아... 병아리가 아니라 오리 새끼였음.
미국이 과연 적대국가인지 몹시 헷갈린다.
동네 할아버지들.
빵가게 풍경.
바게트다.
쇼핑몰의 중정.
갤러리.
Carillo 광장.
카릴로 광장의 덩굴 아치.
Iglesia de San Francisco de Paula. 수도원인가?
Iberostar Grand Hotel Trinidad. 5성급 호텔이다.
이 날씨에 고기를 이렇게 팔아도 되는 건가?
잠시 소나기가 내렸다.
세라믹 갤러리 겸 상점.
세상 편한 의자에서 오가는 사람 구경 중.
Casa de la musica. 단연 트리니다드의 랜드마크다. 만남의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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