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문 트리니다드는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낯이 살짝 붉어졌다. 카페나 식당에 사람들이 들어찼고 마요르 광장 일대에는 젊은 여행객들이 모여들었다. Trinidad Teraces 앞 계단 테이블은 벌써부터 사람들로 가득해서 앉을자리를 찾기 힘들었고 식당 앞 라이브 무대에서는 레게풍의 연주가 이어져서 흥겨웠다. 음악과 가벼운 음식과 술, 그리고 여기저기 흥에 겨운 즉석 댄서들은 굳이 내 기억 속의 한 장면을 끄집어냈다. 난디의 데나라우 포트에서 Sea food flatter를 하나 시켜놓고 흥청거렸던 그날. 모든 것이 좋았던 그 밤은 어떤 해피엔딩도 담보하지 않았다.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생각보다 연역적이지도 귀납적이지도 않은 편이다. 어느 한순간 모든 것이 쉽게 달라지고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우습게 파편이 되어 흩어진다. 그래도 그때 그 순간은 참 즐거웠고, 시덥지 않은 왕십리 농담도 좋았고, 옆 테이블에서 춤을 추던 커플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웠다. 위대한 게츠비의 파티마냥 들뜬 느낌으로 살랑거렸던 피지의 그 밤처럼 트리니다드 마요르 광장도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설레임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계단 아래쪽 광장에서는 잘 잡히지 않는 와이파이 신호를 쫓는 사람들이 와이파이 신호 잡기 시합(!)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 선수로 경쟁에 합류해 봐서 아는데, 와이파이 신호는 결코 2,3분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끊기는 신호와 씨름하는 가련한 영혼들. 사람들은 이 멀리까지 와서도 누군가와의 소통에 연연한다.
트리니다드는 다 둘러보는데 하루나 이틀이면 충분한 작은 도시다. 물가는 타 도시들에 비해 비싼 편이다. 고즈넉한 도시의 분위기에 취해 휴식을 한다면 한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언덕 위에 올라 석양을 감상하거나근처의 앙꼰해변에서 하루를 보내거나 또는 라 보카 해변의 어촌마을을 둘러보는 일정도 괜찮을 듯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의 쿠바 일정은 좀 타이트했다. 다시 가는 쿠바라면 적어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두고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여기저기를 다 둘러볼 듯하다.
아마도 언젠가 누군가와 다시 오게 될 거라는 기대와 혼자 하는 여행의 외로움을 이기기 힘들어서 일부러 일정을 더 빽빽하게 잡았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후회된다. 앙꼰 쪽에는 all you can eat 리조트도 있었던 것 같은데, 산타클라라의 하바나투어에 문의하니 주말에는 풀 부킹이라 예약이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