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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 Jan 07. 2021

시엔푸에고스 스케치

극장으로 보이는 곳에 그림 간판을 매달고 있는 중.

오전 첫 차를 타고 트리니다드를 떠나서 시엔푸에고스로 이동했다. 날씨가 모처럼 화창했다. 시엔푸에고스 역시 그 역사지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도시다. 스페인 식민지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서라고 한다. 그러나 스페인보다는 프랑스풍의 건물들이 더 눈에 띈다. 시엔푸에고스는 쿠바 남부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인구는 약 17만 정도다. 쿠바 혁명의 주역인 까밀로 시엔푸에고스의 이름을 딴 것이 아니고 1825년 폭풍으로 도시가 파괴된 후 성을 재건한 스페인 장군의 이름을 도시의 이름으로 삼았다. 처음 이 지역에 정착한 거주민들은 프랑스의 보르도, 미국의 루이지애나, 필라델피아 등에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시엔푸에고스의 프랑스 풍 건축물들은 아마도 이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루이지애나가 프랑스령이었으니 초기 거주인들의 대다수가 프랑스어권 주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의 주민들 역시 하바나나 산타클라라 보다 백인들의 구성비가 높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유럽풍이다. 

시엔푸에고스에서도 나를 처음 반겨준 사람들은 역시 까사 호객꾼 들이었다. 12 cuc을 제시하는 호객꾼의 손에 이끌려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까사에 짐을 풀었다. 방 열쇠를 챙긴 후 바로 시엔푸에고스 역사지구로 향했다. 터미널에서 바닷가로 이어진 길을 따라 2-3킬로 정도 걸어가니 바로 역사지구가 나왔다. 평일인데도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관광객들보다 현지인들이 더욱 많아 보였다. 뭔가 이 곳은 쿠바의 다른 동네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훨씬 더 세련되어 보인다. 심지어 거리에 돌아다니는 자동차들도 쿠바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신차들이 많았다.  

아케이드 안에 점포인데도 햇살이 강하게 쏟아져서 파라솔로 가리고 있다.
뭐를 파는 거지? 담배인가?


호세 마르티 공원으로 가는 길.
쿠바 여성들의 타이트한 정장 차림도 나름 시그니처다.
골목 안쪽에 있던 만물상.
벤츠에 지프에 야마하 바이크... 차들만 보면 유럽인 줄...
경찰 바이크를 타고 있는 경찰관.


적어도 역사지구만큼은 어느 한 곳 무너지거나 부서진 곳 없이 말끔한 모습으로 정비되어 있었고, 사람들의 활기는 이곳이 경제적으로 뒤쳐진 공산국가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다. 햇살은 거리 가득 차 오르고 마음은 봄소풍을 나온 아이마냥 살랑거렸다. 3월은 여러모로 이쪽 지역을 여행하기 참 좋은 때이다. 너무 덥지도 않고, 방학을 빗겨나가 전체적인 관광객 숫자도 적고 비교적 한가한 데다가 건기와 우기의 중간쯤에 있어서 날이 마냥 우울하지도 않고, 하냥 뜨겁기만 하지도 않다. 여행짐을 가장 단출하게 추릴 수 있다. 역사 지구를 가로질러가면 구아버 주스가 정말 시원하고 맛있는 길거리 피자집이 나온다.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집. 거의 이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처음 구아버 주스를 들이켰을 때의 그 아찔한 시원함과 없는 머리털까지 곧추세우던 그 짜릿한 달달함이 현실처럼 느껴진다. 뭐 피자 맛은 어느 곳이나 똑같이 맛있으니 거론할 필요가 없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이때쯤부터는 아침, 점심, 저녁의 개념이 없어진 듯하다. 그냥 길거리 피자집이 보이면 무심히 들러서 피자나, 파스타 그리고 주스나 탄산 한잔을 시켜 먹는 것이다. 그렇게 걷다가 멈춰서 먹고를 반복하다 보니 따로 끼니라는 것이 없어져 버렸다. 허기를 채운 후 시엔푸에고스 만으로 나갔다. 만으로 들어온 바다는 작은 호수 같았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찰랑이는 짙푸른 파도가 만들어낸 산들바람을 타고 갈매기들이 날아올랐다. 바람이 흘러가는 곳으로 조금 걷다 보니 공예품 거리가 나온다. 길거리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유화를 그리는 화가들. 선글라스를 끼고 그림을 그리는 어떤 화가의 모습이 특이했다. 컬러는 이미 정해져 있어서 가능한 걸까? 그래도 그 미묘한 색조의 차이는 어떻게 하고... 

그림과 작은 미술품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어서 야외 갤러리를 걷는 느낌이었다. 두어 시간 만에 역사지구를 한 바퀴 다 돌았다. 역사지구는 딱 그 정도의 공간이다. 

시엔푸에고스 대성당.
예술박물관과 전망대.
비싸 보이는 스쿠터. 시엔푸에고스의 분위기는 다른 도시와 좀 다른 구석이 있다.
시엔푸에고스의 초등학생들.
시엔푸에고스의 단골집. 구아버 주스가 정말 맛있고 시원하다. 
시엔푸에고스 만.
공예품을 파는 가판.
풍물시장인데 공예품이나 그림들을 많이 판다.
즉석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성당 내부.

역사지구의 북서쪽 코너에 있는 길거리 피자집 건너편에 작은 박물관이 하나 있다. 이름은 Museo de las Artes Palacio Ferrer. 이곳 옥상에 시엔푸에고스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작은 전망대가 하나 있다. 시엔푸에고스 역시 높은 빌딩들이 거의 없어서 5,6층 높이만 올라가도 탁 트인 도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높이 올라가지 않는 동네 전망대는 아주 매력적이다. 전체적인 풍경과 동시에 동네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가까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볼 것이 더 많은 느낌이다. 전망대 입장료는 2 cuc이다. 1,2층은 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는데 생활 소품 몇 점이 전부다. 특별히 구경할 만한 것은 없다. 2층 옥상에 전망탑을 만들어 놨다. 회전 철계단을 빙빙 돌아서 올라간다. 사람 하나가 겨우 올라갈 만한 좁은 계단을 사람들이 끝없이 교차하며 오르내린다. 돔 지붕 위로 솟아 있는 전망대의 좁은 공간까지 올라가면 은근히 짜릿한 스릴이 있다. 올라가서 보면 꽤 멀리까지 시엔푸에고스의 풍경이 넓게 펼쳐진다. 속이 확 트이는 느낌이다. 호세 마르티 공원을 둘러싼 작은 역사지구를 제외하고 일반 주택가의 풍경은 다른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쪽과 북쪽으로 펼쳐진 시엔푸에고스 만은 마치 호수처럼 잔잔했다. 역사지구의 초입에 있는 메인도로로 나가 바닷가를 따라 걸으면 시엔푸에고스의 말레꼰이 펼쳐진다. 끝이 막다른 2킬로 정도의 도로를 걸었다. 하바나의 말레꼰에 비해서 다소 황량하다. 하바나의 말레꼰 같은 운치는 없다. 사람도 다니는 차량도 적었다. 말레꼰의 중간 정도에 왔을 때 산타클라라의 단골집 Vinos Pizza가 눈에 띄었다. 쿠바에도 프랜차이즈가 있는 걸까? 마침 출출하던 차라 반가운 마음에 들러서 식사를 했다. 오후 시간대가 되니 멀리서 짙은 구름이 몰려왔다. 섬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말레꼰 끝에 있는 작은 공원에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역사지구로 발길을 옮겼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엔쿠에고스 만의 풍경.
시엔푸에고스 말레꼰 끝에 있는 리조트.
시엔푸에고스의 전망대.
역사지구의 입구쪽 쇼핑거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주택가.
시엔푸에고스의 주택가2.
역사문화지구.
시엔푸에고스 만으로 나가는 길.
Palacio de Gobierno. 정부궁전. 프랑스인이 건축했다고 한다. 현재는 정부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전망대 옥상 테라스.
말레꼰의 바이크 택시.
말레꼰에 있는 휴게 시설.
내 카메라를 보고 반갑게 표정을 지어보이는 동네 어르신.
말레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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