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낮 동안 눈이 부실 정도로 따갑던 햇살이 자취를 감추고 하늘은 온통 먹구름 천지가 됐고, 한 순간 세차게 소나기가 퍼부었다. 후드득 비가 시작되자 다들 어디론가 후다닥 사라져 버리고 길은 금세 흠뻑 젖어 버렸다. 나라고 별 수 있나. 가장 가까이에 있던 어느 가게의 처마 밑으로 숨어들었다. 우산도 없었고, 카메라는 비에 취약했다. 비에 젖은 도시는 사진 찍기에 아주 매력적인 공간이 된다. 어느 늦가을 비 오던 토론토의 거리들이 떠올랐다. 버스와 트램을 번갈아 타며 토론토 곳곳을 찍고 돌아다녔었다. 한국의 도시들도 그렇게 비가 내렸을 때 차례로 돌아다니며 찍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저런 상념에 잠시 젖어 있을 때 비가 그쳤다. 메인 도로로 나가서 북쪽을 향해 걸었다. 기대했던 대로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Catedral de la Purisima concepcion. 역사지구의 또 다른 성당이다.
호세 마르티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동네 아주머니들.
호세 마르티. 이제 이 분이 너무 익숙하다.
대성당.
로렌조 학교.
학교 앞 기둥이 제 집 안방인양 기대고 앉아 계심.
정부 궁전.
스페인풍 건물의 층고는 매우 높아요.
비에 젖은 피사체들의 컬러는 진득하게 렌즈를 파고들었다. 비에 젖은 도로는 검푸른 하늘을 토해냈다. 비를 피해 사라졌던 사람들이 일시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퇴근 시간이다. 버스정류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자전거와 바이크도 다시 등장했다. 흐린 날의 사진은 콘트라스트가 약해지고 Tonal distribution이 극대화된다. 굳이 후보정을 통해 암부와 명부의 디테일을 살려내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날 것 그대로의 사진도 좋다. 이러다가 간간히 구름 사이로 햇살이 어느 한 지점에 떨어지면 그 광경이 환상적이다. 마침 그곳에 사람이 있으면 그야말로 자연이 만들어 내는 spot light가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늦은 오후에 소나기가 쏟아져서 날은 빨리 어두워졌다. 비 오는 날의 야경도 좋지만, 쿠바의 지방 도시 시엔푸에고스의 야경은 그다지 환하지 않았다. 높은 빌딩도 없고 다소 어두운 가로등이 전부다. 짧은 시간 남북을 가로지르는 메인 스트릿을 바쁘게 오르내렸다.
체게바라 얼굴이 간판으로 걸려 있는 쇼핑몰.
시내버스 승객들. 일제히 나를 쳐다 본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깔깔댄다. 신기했을까?
비에 젖은 아스팔트 도로.
비에 젖은 발자국들.
비에 젖은 도로의 질감은 늘 좋다.
비에 젖은 도로를 걷고 있는 여인들.
비에 젖은 도로 위의 각종 탈 것들.
쿠바인들은 애나 어른이나 여자나 남자나 대체로 다 멋지게 입고 다닌다.
이 커플은 언제 이별할까? 멀지 않은 미래일 듯.
낮에 시내에서 과일 팔던 베레모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앙증맞은 바이크에 문신한 라이더의 조합이 묘하다.
동네 노인들과 달마시안.
비온 뒤의 자전거 라이딩.
가로등에 기대어 쉬고 있는 처자.
바이크 택시. 저 위에 클럽 간판은...당구장일까?
경찰이 아닌 듯.
도로의 남쪽에 산타클라라에서 발견했던 국영 아이스크림가게 코펠리아가 있었다. 아이스크림 카페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날 나는 두 번이나 이 아이스크림가게를 들렀다. 손바닥만한 지름의 컵 가득 아이스크림을 퍼서 가져다주는데 한 번은 2.6 모네타, 다른 한 번은 3 모네타였다. 모네타는 로컬 화폐단위인 cup의 다른 말이다. cup은 24분의 1달러다. 우리 돈 50원이다. 따라서 나는 우리 돈 150원이 안 되는 돈으로 한국에서라면 적어도 만원은 넘을 만큼의 아이스크림을 호식한 것이다. 사실 아저씨 혼자 아이스크림을 퍼 먹는 게 다소 민망하긴 했지만, 그런 어색함도 잠시 아이스크림 맛에 빠져들어 그런 부끄러움 따위는 개나 줘 버릴 일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홀에는 나 같은 나 홀로 손님도 적지 않았다. 코펠리아는 쿠바식 복지의 한 모습이다. 그들의 적은 소득으로도 누구나 아이스크림 정도는 한 번씩 즐겨볼 수 있는 것이다. 값이 싸다고 위생이나 맛, 서비스가 떨어지지 않는다. 옆에 다가와 서빙하는 웨이터들의 서브는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