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스포를 돌아보고 다시 까삐톨리오 쪽으로 걸어 나왔다. 해가 이미 많이 기울어 있었다.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까삐톨리오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낮은 햇살이 골목을 가득 채웠을 때 하바나의 평범한 뒷골목을 보고 싶었다. 낡고 지저분하고 여기저기 부서져 내려서 심란하기만 했던 골목들이 노을빛에 반짝거렸다. 낮게 깔린 햇빛은 거침없이 골목으로 달려들어 검은색 아스팔트 위로 튀어 오르고 파스텔 색깔로 칠해진 건물의 벽면은 노을빛이 더해져 따뜻해졌다. 가로등 램프마다 벌써부터 불이 켜져서 자연의 빛과 사람의 빛이 공존하는 시간의 묘한 긴장이 골목을 채운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바삐 걸음을 옮겼다.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다. 어릴 때 길가 집에 살면서 늘 보았던 풍경들. 전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그곳에 어김없이 시장이 있었고, 그 시장에서 뭐라도 사 들고 집으로 바삐 걸어가던 그 사람들. 가던 발길을 멈춘채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하강식 사이렌이 멈추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풍경도 떠올랐다. 쿠바 골목은 그렇게 우리의 7,80년대 시장 거리로 연결됐다.
나는 발걸음을 말레꼰이 있는 북쪽으로 돌렸다. 천천히 말레꼰에 이르는 동안에 골목은 점점 더 쓸쓸해졌다. 가로등 불빛들이 더욱 환해졌을 때 말레꼰 근처에서 카페테리아 하나를 발견했다. 손님들이 많이 있는 걸 보니 맛집이 분명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랴. 손 피자 하나와 파스타 하나를 시켰다. 그래 봤자 천 원 남짓. 예상하고 기대했던 그대로의 맛이었다. 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같이할 가족이 없는 것일까? 이 시간에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은걸까? 문득, 나도 여기서 혼자 뭘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외로움이 서늘해진 공기를 뚫고 옷깃을 파고들었다. 따뜻한 길거리 음식들이 허기는 쉽게 채워줬지만 낯선 땅을 걷고 있는 방랑객의 마음속 허기까지는 다 채워주지 못한다. 아직 아스라이 남아있는 햇빛을 따라 다시 걷는다. 곧 다시 말레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