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거리를 서성이다.
어린 시절 내가 처음 매력을 느꼈던 사진들은 거리의 야경을 찍은 것들이었다. 거리에 어둠이 깔리면 온갖 지저분한 것들은 감춰지고 가로등이나 네온사인의 불빛이 떨어지는 그곳에 자연스럽게 사람의 시선이 머물게 된다. 예전 서울의 길들은 어느 곳이나 어수선하고 지저분했다. 지붕 위를 정신없이 가로지르는 전선들은 특히 산만했다.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 생각 없이 셔터를 누르고 나면 여기저기 의도하지 않은 elements들이 정신없이 배치된 채로 찍혀서 실망하곤 했는데, 야경을 찍으면 상대적으로 그럴 일이 적었다. 학생 때는 그래서 주로 야경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일반 필름보다 비싼 고감도 필름을 장착하고 대학로와 신촌 그리고 연신내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껴서 한 컷을 찍었던 기억들이 새롭다. 그런 추억 때문인지 가로등에 불이 켜지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설렌다.
캐나다나 미국의 도시들에 비해 하바나는 조명이 밝은 편이어서 사진 찍기가 좋았다. 석조건물의 외관을 드러내는 조명들도 밝고 멋스러웠다. 가스등을 연상케 하는 노란색 램프들이 길을 밝히면 도시 전체가 따뜻하게 옷을 갈아입는다. 오비스포에 어둠이 내리고 골목에는 재즈밴드의 선율이 흘러 다녔다. 골목의 카페들은 테이블을 밖으로 끄집어냈고, 사람들은 안보다는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셨다. 가로등이 비추는 하바나의 골목들은 하나같이 그 어떤 곳보다 멋스러운 그림이었고 사람들은 그 그림을 기꺼이 즐겼다.
카페 캐러비안에서 햄버거와 망고주스를 사 먹은 후 오비스포와 그 주변을 돌아다녔다. 보름달과 구름이 꽤 멋있는 풍경을 만들었다. 똑같은 거리를 두세 번 돌고 나니 이내 지치고 지루해졌다. 오바마가 사 먹어서 유명해졌다는 길거리 추로스를 한 봉지 사들고 숙소로 향했다. 초저녁 밤거리의 웅성거림도 슬슬 자취를 감추고 거리는 차츰 쓸쓸해졌다.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다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새벽에 하바나 거리를 장노출로 담아봤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이 또 하나의 숙제가 되어서 나를 다시 하바나로 부르지 않을까?
추로스는 오바마가 극찬할 만큼 맛있었다. 오타와의 비버테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오바마와 내가 식성이 비슷한 면이 있나보다. 오바마가 한국에 온다면 찹쌀도너츠나 꽤배기를 꼭 먹어봐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