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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있을까

이 아늑함과 한가로움을

by M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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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미세먼지에 갇혀 있다. 그냥 미세먼지도 아니고 초미세먼지란다. 폐포까지 스며들어 심혈관 계통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는 공포스러운 정보를 보면서 다시 돌아갈 한국의 삶을 상상하는 게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잠깐 TV를 보려고 넷플릭스를 둘러보니 효리네 민박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제주의 공기는 조금 깨끗하려나?

한참 넋 놓고 이제 아줌마가 되어 있는 원조 걸그룹의 소박한 제주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의 이곳에서의 삶과 비교해 보게 된다.


이곳의 공기는 참 좋다. 이쪽 사우스웨스턴 온타리오는 남쪽의 이리호와 북쪽의 휴런호 사이에 끼어 있어서 그 기후가 마치 섬과 같다. 그래서 간혹 피지섬이 떠오를 때가 있고, 제주의 푸른빛이 감돈다. 난 이곳의 청량함도 좋지만 구름 낀 흐린 날도 좋아한다. 이곳의 구름은 바다 같은 호숫빛을 반사해서일까, 푸른빛이 감돈다. 사진을 찍으면 그야말로 파스텔톤의 하늘색이 바로 그 구름 색깔이 된다. 나는 지금 그런 곳에 살고 있다.


효리네를 보는 느낌은 그래서 부러움이 아니라 공감이 대부분이다.


우리 집 마당은 이곳의 보통 집 마당보다 3배 정도 크다. Ravine lot이라고 작은 개울을 끼고 경사져 내려가는 마당이 펼쳐져 있는데, 눈이 많이 내리면 바로 눈썰매장이 만들어진다. 메인 도로를 향해 오픈되어 있는 마당에 동네에서 가장 큰 나무 한 그루와 이런저런 나무들이 담장을 대신해서 둘러쳐져 있고 개울을 향해 꺾어지는 아랫마당은 높은 나무들로 가두어져 있는 아늑한 공간이다.


마당 한 켠에는 작은 상추밭과 깻잎밭이 있고, 여기서도 이제는 보기 드문 우물이 있다. 올봄에는 두레박이라도 하나 만들어서 물을 한번 길어 올려 볼까?


거실은 동서로 창이 나 있다. 아침에는 뜨는 햇빛이 한 줌 남김없이 창을 붉게 물들이고, 오후에는 또다시 노을이 은은하게 거실로 스며들어온다. 남쪽으로는 커다란 데크가 있다. 이제 봄부터 가을까지 그곳은 고기를 구워 먹고 햇빛과 바람을 느끼며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아 지금 나는 너무 멋진 곳에서 잘 쉬고 있는 것이다.


이 집을 어떻게 할까? 수도 없이 망설이는 시간들이다. 하루를 온통 투자해서 한국에서 살만한 집, 동네를 고르고 또 골라 보아도 이만한 집을 이만한 가격대에서 절대 찾기 힘들다.


캐나다도 도시로 들어가면 어느 집이나 대체로 다닥다닥 붙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집은 서쪽으로 또 다른 John의 집만 있는 Corner Lot이기도 하다.


이 집은 건축한 지 100년이 된 Brick House다. 최근에 짓는 집들은 대부분 경량 목구조이다. 집 짓는 모양을 보면 꼭 한국의 모델하우스 같은 느낌이 들고, 왠지 큰 바람 한번 불면 맥없이 쓰러질 것만 같다. 오래되고 낡은 집이지만 튼튼한 느낌이어서 좋고, 구조가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그래도 여기는 나름 타운 안에 있는 집이다. 내추럴 가스가 공급되고, 상하수도가 들어오고,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마트와 학교, 우체국 등등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딱 두 집 건너 있다. 1분만 걸으면 된다. 점심시간에 애들이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갈 수 있다. 내가 혼자서 볼일을 충분히 보면서도 아이들 롸이드 해줄 일이 없다. 이게 캐나다 살이의 얼마나 큰 메리트인지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사는 데 별 불편함이 없다.


여기서 20분을 운전하면 미국이다. 여기서 디트로이트 공항까지 1시간 30분. 3시간이 걸리는 토론토 공항보다 더 가깝다. 여기서 6분을 북쪽으로 운전해 나가면 맑고 투명한 휴런호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비치로 유명한 Ipperwash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곳곳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해변과 바비큐 공원이 있다.


지난 3년, 이 집 때문에 참 고마웠고 행복했다.

이 집을 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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