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로 Apr 15. 2023

바보포도밭, 귀농이야기

포도 농장을 시작한 남편 이야기

남편이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더는 이렇게 돈만 보며 살 수 없다고. 남편은 학생 때 다섯 살 많은 오빠였다. 흔하지 않았던 운동권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민중가요를 부르고, 집회 현장에 다니며, 학생들을 조직하여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을 했다. 후배들을 재미있게 해주고, 어려운 일 있으면 들어 주고 위로해 주며 지내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생업에 뛰어들고 돈을 벌게 되었고 중소기업의 중책을 맡게 됐다. 100여 명의 직원을 통솔하는 일이 그의 적성에 맞았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기업의 평가는 성과다. 얼마만큼 돈을 벌어 왔는가다. 직원의 마음을 얼마만큼 달래주고 들어주며 나아가느냐가 아니다. 오너와 사업 추진 방법이나 목표에 차이가 있고 매출 성과에 압박을 받으며 힘들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귀농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나는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나 역시 내 일이 있어 그의 사회생활을 살뜰히 살피는 아내는 아니었다. 나도 내 일이 있었고, 남편이 앞으로 자신의 계획을 나에게 설명하며 귀농하는 것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자신이 이대로 여기에서 일하다가는 죽을 것만 같다고 하는 사람에게 참아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뒤로 농촌 생활을 하는 선후배들을 찾아 다녔다. 어디에 귀농하며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지를 탐구했다. 아들은 그런 아빠를 불안해했다.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는 자신에게 가혹한 일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이라도 아빠가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나는 요즘 아이들이 매우 현실적이라는 것에 놀라며 아들을 안심시켰다. ”아빠에게는 다 계획이 있단다. 책임감이 있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니 믿어주고 걱정마라“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남편은 가족 모두 귀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기도 부천 인근 경기도 안성으로 귀농 장소를 택했다. 학생 운동을 같이 했던 선배들의 소개와 연줄을 따라 안성으로 가게 됐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작은 농가 하나를 월세로 얻어 살면서 양파, 감자, 고추, 깨, 벼 등을 심어 기르고 지인에게 팔며 농사 맛을 보았다. 그런 과정에서 주변 농민들과 관계를 맺어 나갔다. 동네에서 믿을만한 이장님 한 분과 친해지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귀농의 가장 큰 어려움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라는데, 남편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어 나갔다. 무엇보다 농사 일을 열심히 배우며 부지런히 한다는 것으로 주변 농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주변 어르신들은 한 번도 농사도 안 지어 본 사람이 땅을 일궈 농사짓는 모습을 보기 좋아했다. 주변 분들이 놀러오면 함께 타 먹을 믹스커피를 떨어 뜨리지 않고 준비하는 것이 그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그렇게 3년이 흘러 천평의 땅을 샀다. 물론 농민 대출을 받아 구매했다. 동네 친한 이장님이 추천해 준 땅이고, 그 이장님을 따라 포도농사를 짓기로 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포도농사를 지을 비닐하우스를 짓고, 나무를 사서 심었다. 포도는 샤인머스킷과 거봉이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샤인머스킷 선택한 것을 걱정한다. 요즘 값어치가 많이 떨어지는 작물이라는 이유다. 그러나 그는 그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처음부터 작물로 큰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아서다. 그는 대신 다른 것을 신경 쓰기로 했다. 농작물을 키우는 과정과 방법에 자신의 열정을 쏟고 싶어 한다.



그가 포도농장을 ‘바보포도밭’이라고 지은 것도 그 이유다. 그는 남들이 ‘바보’라고 말해도 좋다. 나의 길을 천천히 아름답게 걷겠다고 하는 마음을 담아 이름을 바보 포도밭이라고 지었다. 작물을 통해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 내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작물을 유기농법으로 잘 키워 건강한 포도를 키우는 것. 그래서 그 포도의 맛을 알아 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에게 작물을 팔고 자신은 먹고 살만큼의 돈만 벌면 되는 그런 것 말이다. 나는 그가 귀농을 시작하거 3년 만에 그의 포도밭을 만들어 내고, 포도밭을 위해 자신만의 농법을 연구해 나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같이 농사를 지어줄 수 없는 아내이지만, 내 스스로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며 그에게 집안 살림의 부담을 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눈 일이다.


남편의 바보포도밭 이야기가 앞으로 더 궁금하다. 포도에게 노래를 들려 주겠다며 앰프를 설치하였고, 유기농법으로 키우겠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틈틈히 감자, 양파, 고추, 토종벼 등의 작물도 같이 키우고, 주변 사람들의 일을 해주고 돈을 벌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그의 포도 이야기가 기대된다. 앞으로 포도 농사를 하게 되면 가족들이 포도밭에 와서 돌봐주어야 한다고 벌써부터 겁을 주고 있다.


바보포도밭이 자신의 가치를 잘 지키며 건강한 열매를 맺어 누군가의 소중한 영양분이 되어 준다면, 농부가 바라는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이제 하나의 싹을 틔운 바보포도밭의 포도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기도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