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in SEOUL(#25 별이빛나는 이유1)

by 필순

서울의 밤공기는 조금 차가워져 있었다. 편의점을 나와 한참을 걷던 두 사람은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낮게 흘러가고, 가로등 불빛이 조용히 흔들렸다. 어린 왕자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여자가 웃으며 물었다. 어린 왕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나는 가끔 웃지만, 눈은 안 웃어요.”


여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내 눈이?”


“네. 지하철에서도, 카페에서도, 영화관에서도요.”


어린 왕자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입은 웃고 있었는데, 눈은 조금 피곤해 보였어요.”


여자는 웃으려 했지만, 그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보였어?”


어린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일부러 더 환하게 웃어 보였다.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며 웃는 모양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자, 이제는 웃고 있지?”


어린 왕자는 한 발짝 다가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입은 웃고 있어요.”


여자는 장난스럽게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눈은 아직 안 웃어요.”


그 말은 부드러웠지만, 피할 수 없는 거울 같았다. 여자는 순간 말을 잃었다. 웃고 있는 얼굴이 어색하게 굳었다.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며 다시 한번 웃어 보려 했다.


“내가 요즘 피곤해서 그래.”


“피곤하면 눈이 슬퍼져요?”


어린 왕자의 질문은 비난도 걱정도 아니었다. 그저 궁금함이었다. 여자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피곤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왜 그렇게 보이는지, 한 번도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왜 그럴까…”


여자는 스스로에게 묻듯 중얼거렸다. 바람이 지나가며 머리카락을 스쳤다. 어린 왕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저 여자를 쳐다볼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도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던 질문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나는 말이야…”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눈이 잘 웃었던 것 같아.”


어린 왕자는 고개를 기울였다.


“언제요?”


“어릴 때.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았을 때.”


그녀는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했어.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그걸 적어보는 게 재미있었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늦게까지 썼어.”


“지금은요?”


“지금은…”


그녀는 작게 웃었다. 이번엔 스스로를 향한 웃음이었다.


“지금은 쓰지 않아.”


“왜요?”

여자는 잠시 침묵했다.


“잘 모르겠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해야 하는 게 더 많아졌거든. 회사에 다니고, 돈을 벌고, 시간을 맞추고… 그러다 보니 좋아했던 건 나중으로 미뤘어.”


“나중에는 언제예요?”


어린 왕자의 질문은 조용했지만 정확했다. 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 나중으로 미뤄요?”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여자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두려워서. 실패할까 봐.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그리고… 내가 정말 그만큼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서.”

어린 왕자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나는 잘해야만 해요?”


여자는 멈칫했다.


“잘해야만 하냐고?”


“네. 누나는 잘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요.”


여자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어른이니까. 잘해야 인정받고, 잘해야 자리를 지킬 수 있으니까.”


어린 왕자는 조용히 되물었다.


“누가 인정해줘요?”


“회사 사람들. 세상. 가족… 나 자신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린 왕자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누나는 계속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아요.”


여자는 그 말을 곱씹었다.


“지킨다…”


“네. 혹시 놓칠까 봐.”


여자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맞아. 내가 잠깐이라도 멈추면, 뭔가 무너질 것 같거든.”


어린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나는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할 것 같아.”


잠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여자는 벤치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매일 뭔가를 삼키는 기분이야.”


어린 왕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삼켜요?”


“응. 하고 싶지 않은 말도 삼키고, 피곤한데도 괜찮다고 삼키고, 무서운 마음도 삼켜. 그냥 꾹꾹 눌러서 안으로 넣어버려.”


어린 왕자는 한참 생각하더니 갑자기 물었다.


“그럼 배 아프지 않아요?”


여자는 웃음을 터뜨릴 뻔하다가 멈췄다.


“배?”


“네. 많이 삼키면 배 아플 것 같은데요.”


여자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단순했지만 이상하게도 정확했다.


“배 아프겠다. 아마…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봐.”


“뭘요?”


여자는 천천히 대답했다.


“책임.”


어린 왕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책임은 맛있어요?”


여자는 피식 웃었다가, 이내 생각에 잠겼다.


“맛이라… 글쎄. 단맛은 아니야. 조금 쓴맛일 때도 있고, 때로는 아무 맛도 없는 것 같기도 해.”


어린 왕자는 다시 물었다.


“책임은 뭐예요?”


여자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책임은… 내가 맡은 일을 끝까지 하는 거야. 나 때문에 누군가 다치지 않게 하고, 내가 하겠다고 한 걸 포기하지 않는 것.”


“약속 같은 거예요?”


“응, 약속이랑 비슷해. 그런데 더 넓어. 약속은 한 사람하고 하지만, 책임은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하고 하는 거야. 나 스스로에게 하기도 해.”


어린 왕자는 조용히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하고 약속하는 거네요.”


“맞아. 예를 들어 내가 회사에서 일을 하면, 내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힘들어질 수 있어. 그래서 끝까지 해내야 해. 그래서 책임은 너무 무거워.”


어린 왕자는 조용히 말했다.


“책임은 먹을 수 있고 무거운 것이네요. 많이 먹으면 몸이 무거워져 못 움직이겠어요. 책임이란 것은 조금만 먹어야겠어요.”


여자의 심장이 아주 작게 내려앉았다.


“그러게, 많이 먹으면 무거워져서 움직이지도 못하겠다. 조금만 먹어야지.”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말로는 가볍게 던졌지만, 가슴 어딘가가 천천히 울렸다.


“근데… 어떻게 조금만 먹지?”


그녀가 스스로에게 묻듯 중얼거렸다. 어린 왕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누나, 별이 왜 떨어지지 않는지 알았어요.”


“왜?”


“별은 책임을 먹지 않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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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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