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in SEOUL(#27 별이 흐르는 한강에)

by 필순

공원 벤치에서 한참을 이야기한 뒤, 여자는 시계를 한번 바라보았다. 밤은 어느새 깊어져 있었다.


“이제 정말 가야겠다.”


여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린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집에 가는 거예요?”


“응. 내일 또 일해야 하거든.”


여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린 왕자를 바라보았다.


“너는… 괜찮겠어?”


어린 왕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나는 여행 중이니까요.”


그 말은 가벼웠지만 묘하게 단단한 느낌이 있었다. 여자는 어린 왕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웃었다.


“그래도 너무 멀리 가지 마.”


“누나도 너무 많이 책임을 먹지 말아요.”


여자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조금만 먹어볼게.”


잠시 어색하지만 따뜻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여자는 손을 흔들었다.


여자가 공원을 나와 골목으로 사라질 때까지 어린 왕자는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어린 왕자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서울은 밤에도 움직이는 별 같아요.”


그는 천천히 공원을 걸어나왔다. 서울의 밤거리는 여전히 밝았다. 차들이 지나가고, 멀리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섞여 흘러왔다. 어린 왕자는 아무 방향 없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넓은 강 앞에 도착해 있었다. 커다란 다리가 강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자동차 불빛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강물 위에는 수많은 불빛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강가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말을 잃었다.


“우와…”


서울의 빛들이 강물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별들이 물속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어린 왕자는 강물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울에는 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강물을 가리켰다.


“여기 있었네.”


강물 속의 빛들은 물결에 따라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들은 하늘 대신 물을 보고 있었구나.”


그때였다. 강물에서 작은 물결 하나가 둥글게 퍼졌다.


“첨벙.”


어린 왕자는 놀라서 강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물 위로 작은 얼굴 하나가 조심스럽게 올라왔다. 둥근 눈, 반짝이는 수염, 젖은 털. 작은 수달이었다. 수달은 어린 왕자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별을 보고 있니?”


어린 왕자는 눈을 크게 떴다.


“어?”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어!”


수달은 강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채 어린 왕자를 바라보았다.


“별이 아니라 서울이 비친 거야.”


어린 왕자는 고개를 기울였다.


“서울?”


“그래. 사람들의 빛.”


어린 왕자는 다시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물 속에는 다리의 불빛, 빌딩의 불빛, 자동차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럼… 서울이 별이네.”


수달은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사람들은 그걸 잘 몰라.”


어린 왕자는 물었다.


“왜?”


수달은 천천히 물 위에서 몸을 뒤집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너무 바빠. 위를 볼 시간도, 아래를 볼 시간도 없거든.”


강물 위에 작은 파문이 퍼졌다. 어린 왕자는 한참 동안 물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누나는 오늘 무거워 보였어.”


수달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거워?”


“책임을 많이 먹었대.”


수달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래서 물에 비친 눈이 조금 슬펐구나.”


어린 왕자는 놀라며 물었다.


“알았어?”


“물은 많은 걸 비춰 주거든.”


수달은 강물을 가볍게 헤엄치며 말했다.


“사람들은 강에 와서 앉아. 아무 말도 안 하고.”


“왜?”


“무거운 걸 잠깐 내려놓으려고.”


어린 왕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도 여기 오면 좋겠네.”


수달은 웃었다.


“아마 올 거야. 사람들은 결국 강을 찾거든.”


“왜?”


수달은 물 위에 떠 있는 빛들을 바라보았다.


“강은 흘러가니까.”


“흘러가?”


“그래. 아무리 많은 빛이 내려와도, 강은 다 안고 흘려보내.”


어린 왕자는 눈을 크게 떴다.


“강은 책임을 먹지 않는 거네.”


수달은 조용히 말했다.


“그래. 강은 그냥 흐르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강물 위의 별들이 천천히 흔들렸다. 어린 왕자는 미소 지었다.


“누나에게 이야기해 줘야겠어.”


“뭐를?”


수달이 물었다.


“서울에는 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린 왕자는 강물을 가리켰다.


“여기 있었다고.”


수달은 물속으로 살짝 잠겼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럼 누나는 조금 가벼워질 거야.”


어린 왕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강 위를 스쳐 지나갔다. 강물 속의 별들이 흔들렸다.

어린 왕자는 한참 동안 그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중얼거렸다.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네.”


서울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하늘의 별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강물 속에서는 수많은 별들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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