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물 위의 빛들이 잔잔하게 흔들렸다. 어린 왕자는 강가에 서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울의 불빛들이 강물 속에서 부서지듯 반짝이고 있었다. 다리 위를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이 길게 늘어졌다가 다시 짧아졌고, 건물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물결 위에서 작게 떨리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눈을 조금 가늘게 떴다.
“이상하다…”
그가 작게 말했다. 수달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다가 물었다.
“뭐가?”
어린 왕자는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흔들리는데… 별이 없어지지 않아.”
수달은 가볍게 꼬리를 흔들었다.
“원래 그래.”
어린 왕자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흔들리면 사라지는 줄 알았어.”
수달은 물 위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다 사라지면 재미없잖아.”
어린 왕자는 피식 웃었다.
“그렇네.”
잠시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을 바라봤다. 바람이 조금 더 불었다. 물결이 살짝 커지며 빛들이 더 크게 흔들렸다. 어린 왕자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강은 계속 흘러가는데… 어디로 가?”
어린 왕자의 말에 수달은 잠시 생각하는 듯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글쎄. 계속 가.”
어린 왕자는 눈을 깜빡였다.
“끝이 없어?”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르지.”
어린 왕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끝까지 가본 적 있어?”
수달은 웃었다.
“없어.”
어린 왕자도 작게 웃었다.
“나도 없어.”
잠시 조용한 웃음이 흐르고, 다시 밤이 고요해졌다. 그때였다. 물 위에 작은 것이 하나 떠내려왔다. 어린 왕자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거 뭐야?”
수달이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종이배야.”
하얀 종이배 하나가 물결을 따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조금 젖어서 끝이 살짝 구겨져 있었지만, 그래도 형태는 그대로였다. 어린 왕자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누가 만든 걸까?”
수달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누군가가 만들었겠지.”
“왜?”
수달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보내려고.”
어린 왕자는 종이배를 한참 바라봤다. 종이배는 물결에 맞춰 작게 흔들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저건… 없어지는 거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수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가는 거야.”
“어디로?”
수달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여기 말고 다른 데.”
어린 왕자는 눈을 깜빡였다.
“다른 데…”
종이배는 점점 강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빛들이 그 위에 반짝이며 부서졌다. 어린 왕자는 그걸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으로 계속 따라갔다.
“빛이 따라가고 있어.”
수달은 웃었다.
“같이 가는 거지.”
어린 왕자는 조용히 말했다.
“종이배가 별을 데리고 가는 것 같아.”
수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물 위에 가만히 떠 있었다. 종이배는 조금 더 멀어졌다. 다리 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빛이 점점 줄어들고, 그림자가 그 위를 덮었다. 어린 왕자는 몸을 더 앞으로 기울였다.
“이제 잘 안 보여.”
수달이 말했다.
“그래도 가고 있어.”
어린 왕자는 한동안 종이배가 떠 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수달의 말에 보이지 않는데도, 여전히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계속 가고 있구나.”
“응.”
어린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바람이 불었다. 강물 위의 빛들이 다시 흔들렸다. 어린 왕자는 손을 내밀어 물을 살짝 건드렸다. 차가운 물이 손끝에 닿았다. 동그란 파문이 퍼지며 빛이 함께 흔들렸다.
“조금 만졌는데도 이렇게 흔들려.”
수달이 말했다.
“그래도 금방 돌아와.”
어린 왕자는 물을 가만히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흔들리던 빛들이 다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정말이네. 흘러가는데… 없어지는 건 아니야.”
수달은 물 위를 천천히 헤엄쳤다. 작은 파문이 퍼졌다. 어린 왕자는 조용히 그걸 바라봤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눈에 안 보여도… 있는 거네.”
수달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다시 한 번 강 위를 스쳤다. 물결이 일고, 빛들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어린 왕자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빛들을 바라봤다. 흔들리고 있었지만,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천천히 말했다.
“오늘은… 별이 가까웠어.”
수달은 갑자기 물속으로 천천히 잠겼다. 잠깐 물결이 흔들렸다가 다시 잔잔해졌다. 급하게 수달은 어느 곳으로 가려하고 있었다.
“또 보게 될 거야. 이곳에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 네 이야기를 해 둘게.”
수달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작게 들렸다. 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강물만 남았다. 어린 왕자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강을 한 번 더 바라봤다. 조용했고, 밝았고, 따뜻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서울의 불빛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어린 왕자는 작게 중얼거렸다.
“서울은… 별이 많은 곳이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까보다 조금 가벼운 발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