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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Feb 04. 2021

띵동~ 당뇨입니다.

  트라우마 상담이 있는 날이라 휴가를 냈다. 아침 일찍 상담 일정이 잡혀서 서둘러 아침을 먹고 있는데 '띵동' 문자가 왔다. 


'검사 결과 당뇨 소견입니다. 간 기능 수치도 상승되고 있으니 내원하셔서 처방받으세요 - ㅊㅌㅎ 내과 -


  지난 연말에 야간근무자 특수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혈당 수치와 간수치가 높으니 전문의 진료를 받아보라는 결과가 나와서 엊그제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다시 혈액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를 문자로 보내준 것이다.


  기분이 과히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팍 나쁘지도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던 까닭인가 보다. 경찰관이 되어 20여 년을 야간근무를 일상으로 해온 까닭에 몇 해 전부터 이곳저곳 이상 신호가 오긴 했는데 술, 담배를 끊고 운동을 해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실종팀에 와서 한 2년을 3일에 한 번씩 밤을 새우고 그중에 하루는 꼬박 24시간을 근무했더니 건강이 더 나빠진 듯하다. 


  상담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다. 의사 선생님에게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당뇨약과 간장약을 처방받고 혈당 체크를 해보았는데 다행히도 낮게 나와서 우선 약을 먹지 말고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조절해보고 3개월 후에 다시 검사를 해보자고 하신다. 결국 간장약만 처방받아 나왔다. 약국에 들러 약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히려 마음이 담담해졌다. 오히려 잘 되었다. 혈당 수치와 간 기능 수치를 관리하려면 기름진 음식을 줄이고 적게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생활을 절제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결과가 나에게 복이고 감사한 일일지도 모른다.   


  바울 사도는 가시 같은 질병을 평생 가지고 살았는데 그 고통이 너무 커서 하나님께 병을 고쳐 달라고 세 번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 번째 기도 후 하나님은 '내 은혜가 이미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진다.'라고 응답하신다. 바울은 자신의 질병을 자신이 교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그래서 자신의 질병, 자신의 약함을 더욱 기쁘게 자랑한다고 고백한다.  


  나는 참 약한 구석이 많다. 날 때부터 약골이었고 너무 말라서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빼빼짱구'라고 놀리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위염을 앓았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아토피 피부염에 시달렸다. 나를 형사의 길로 이끈 것은 나의 이런 육체의 약함을 이겨내고 강하게 변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마동석 같은 형사가 범인을 잘 잡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겠지만 완력도 약하고 눈도 나쁘고 달리기도 그다지 빠르지 않은 내가 범인을 잘 잡아 전국 형사평가에서 1등도 하고 경기형사 프로캅스에 선정되기도 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던 일이다. 그렇구나. 이제야 알겠다. '내가 약할 때 하나님께서 강함 되시고, 내가 약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진다'는 말씀이 어떤 것인지를.


  나의 건강을 온전히 그분께 맡기고 나는 그분의 강함을 받아 그분이 나를 세상에 보내신 사명을 이루어가는데 마음을 쏟겠다. 내가 엄청난 괴력을 소유하고 총명한 지혜를 가지고 있기보다는 질병에 시달리는 연약한 육신과 부족한 지혜를 가지고 범인을 잘 잡는 것이 더 재미있고 보람 있지 않을까. 세상에 없는 상상 속의 슈퍼 히어로보다는 약함을 뛰어넘어 성취해내는 시민 곁의 작은 영웅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내가 받은 계시가 너무나 크고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가 너무 교만해질까 봐 내 몸에 가시 같은 병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교만하지 않도록 나를 괴롭히는 사탄의 사자입니다. 나는 이 고통이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세 번이나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약한 것을 더욱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머물러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고 모욕을 당하고 가난하며 핍박과 괴로움 받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 고린도후서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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