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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형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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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Apr 13. 2022

뜻 밖의 손님


#1. 불길한 전화

“옴마야!” 간병일을 마치고 돌아와 남편과 함께 막 저녁을 먹으려던 명옥씨는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휴대폰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와 그리 놀라나? 전화 오는 소리구만.” 남편의 핀잔을 뒤로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조카 미란이었다. ‘이모, 미영 언니가 이틀 동안 회사를 안나온다 하는데 무슨 일인가?’ ‘그래? 일요일에도 다녀갔는데 저녁 먹고 이모부랑 한 번 다녀올게’ 전화를 끊은 명옥씨는 아무래도 불길한 마음에 밥이 넘어가지 않아 상을 물리고 남편과 집을 나섰다.


#2. 악몽

‘꿈이겠지. 꿈이야. 이렇게 무섭고 끔찍한 꿈이 있나’ 명옥씨는 눈 앞의 광경이 꿈만 같았다. 꿈이라고 몇 번을 되뇌어도 몸은 덜덜 계속 떨렸고 머릿속은 자꾸만 하얘졌다. “미영아, 미영아, 안에 있나? 어디 아프나?”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문을 열고 들어간 조카의 거실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조카 미영이는 피가 흥건해진 씽크대 앞에 쓰러져 있었다. “이게 뭔 일이나? 응? 미영아 말 좀 해보라.” 명옥씨는 울부짖으며 눈을 감지도 못한 채 굳어진 조카를 연신 흔들어 깨웠다.


#3. 꽈배기 인생

대머리 사내는 나이에 비해 퍽 건장해 보였다. 두꺼운 패딩점퍼를 입었는데도 다부진 몸매와 근육질의 팔뚝은 숨겨지지 않았다. 소주 한 병을 연거푸 들이킨 사내는 눈에 힘을 주며 느릿느릿 일어섰다. ‘제기랄,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뒤틀려 버렸을까?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순대가 삶아지는 대야 옆에 한가득 쌓인 꽈배기를 보고 사내는 자기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너도 참 더럽게 꼬였다.’ 이른 아침부터 취기가 오른 사내는 애써 비틀거리지 않으려고 용을 쓰며 큰 형님 집으로 향했다.


#4. 흔적 없는 범인

현장에서 건진 것은 피 묻은 족적 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없어진 피해자의 휴대폰이 동래역 부근 기지국에서 꺼졌다는 것이 유일한 단서다. 우선 범인의 행적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범인의 행적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더군다나 범행추정시간은 피해자가 퇴근한 시점부터 시체로 발견될 때까지 거의 이틀이나 된다. 형사들은 우선 주변 CCTV를 뒤졌다.


#5. 숨바꼭질

이제 보이지 않는 범인과 싸움이 시작되었다. 형사들은 각자 임무를 분담하고 그 싸움에 뛰어들었다. CCTV 자료를 분석하고 주변에서 확인된 사람과 차량의 행적을 쫓았다. 이웃과 주변 상점에 대한 탐문수사도 병행하였다. 그러나 보름 동안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안타까운 시간만 흘러갔다.


#6. 빙고

형사들은 점점 지쳐갔고 뚜렷한 단서가 나오지 않아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형사들은 포기할 수 없었다. 피해자의 억울한 호소와 눈물이 들리는 듯 했다. 분명히 CCTV에 답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확보된 녹화자료를 천천히 하나 하나 확인해 나갔다. 그러던 중 피해자 집과 몇 블록 떨어진 방범용 CCTV에 수상한 사람이 포착되었다. 영상도 희미하고 멀리 찍혀 있어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찾아내기 쉽지 않은 영상이었다. 그 남자는 배낭을 메고 주택가를 두리번거리다 피해자의 집 방향 골목길로 사라졌다. 형사들은 그 사람을 쫓기로 하고 주변 CCTV 자료에서 그 남자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CCTV에 나타났던 그 남자는 40여 분 동안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형사들은 그 남자가 범인이라면 그 시간동안 범행을 하고 지역을 벗어나 도주하였을 것으로 보고 발생지역을 빠져나가는 곳에 위치한 외곽지역의 CCTV를 다시 검색하였고 군포역 쪽으로 급하게 나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배낭을 멘 것 외에 동일인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피해자 집에서 해당 CCTV까지 실제 거리를 측정하고 걸어갔을 때와 뛰어갔을 때 시간을 잰 후에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군포역 방향의 CCTV를 확인하였다. 이 지역은 CCTV가 거의 없는 대로변으로 행적확인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다행히 공원 CCTV에 이 남자가 수돗가에서 옷과 몸, 신발을 씻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이 남자가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선정되는 순간이었다.


#7. 퍼즐 맞추기

일단 유력한 용의자가 선정되자 수사는 급진전 되었다. 용의자는 군포역을 이용하여 자신의 은신처로 도주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용의자는 영등포역까지 가서 다시 부산행 기차를 탔다.

형사들은 부산역에 집결하여 행적을 뒤쫓기 시작했다.

용의자는 동래역 부근 식당가에서 행적이 끊겼다. 이 곳은 피해자의 휴대폰 기지국이 최종 확인된 지역이었다. 형사들은 용의자의 은신처를 찾기로 하고 주변 숙박업소, 게임장, 피씨방, 만화방 등을 하나 하나 확인하기 시작했고 시장 안 식당가를 훑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혹시 이렇게 생긴 사람 식당에 왔던 적이 없나요?” 장형사가 내민 사진 한 장을 받아 들고 찬찬히 살피던 아지매는 한 사내가 생각났다. “이 아저씨, 맞아요. 이 아저씨 그 때 와서 국밥을 두 그릇이나 먹고는 돈이 없다고 핸드폰을 맡기고 갔어요.” 장형사는 찌릿한 전율을 느꼈다. “아주머니, 그 핸드폰 좀 볼 수 있을까요?” 아지매가 카운터 서랍 속에서 꺼내 준 핸드폰. 피해자의 것이었다. 풀리지 않던 어려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아 낸 장형사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8. 또 다른 악몽

형님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사내는 생각하기도 싫은 그 날이 다시 떠올랐다. 부릅 뜬 피해자의 두 눈이 아직도 자신을 노려보는 듯 했다. 사내는 그 날 일자리를 구하러 군포에 올라왔다. 인력사무소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사내는 다시 부산으로 가기 위해 군포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꼬르륵~’ 배가 고팠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부터 굶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하자. 다음부터는 정말 안한다.’ 사내는 어느새 군포역 앞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털기 좋은 집을 물색하고 있었다. 대문이 열린 집이 보였다. 들어가서 살펴보니 인기척이 없다. 조심스레 현관문을 당겨보았다. 잠겨 있다. 두리번 거리던 사내는 담장 밑에 있던 돌멩이를 발견하고 현관문 유리를 향해 힘껏 던졌다. ‘쨍그랑’ 사내는 능숙한 솜씨로 깨진 유리 사이로 손을 넣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가 깨지는 데에도 아무런 기척이 없는 것을 보면 아무도 없는 것이 틀림없다. 사내는 안심하고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서랍에서 찾아낸 현금 5,000원을 들고 ‘뭐 이리 가져갈 것이 없나?’ 하던 사내는 화들짝 놀랐다. 어디선가 ‘누구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있었나? 사내는 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재빨리 작은 방에서 나갔다. 거실에는 아줌마가 잠이 덜 깬 얼굴로 서 있었고 사내를 보자마자 ‘강도야!’하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내는 아줌마를 밀치고 현관문을 밀었다. 하지만 아줌마는 쓰러진 채 사내의 발을 꽉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계속 ‘강도야! 강도야!’ 소리치고 있었다. 당황한 사내는 아줌마를 사정없이 때렸다. “놓아! 이 년아, 놓아! 그냥 갈테니 놓아!, 제발 좀 놓아!” 사내는 울부짖다시피 소리치며 아줌마를 더 세게 때렸지만 아줌마는 놓아 주지 않고 더욱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대로 조금 더 있으면 누군가 쫓아 들어와 잡힐지도 모른다. 잡히면 안된다.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지긋지긋한 빵살이를 다시 하다니. 안되지. 절대 안되지. 싱크대 위에 있던 식칼이 보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식칼을 움켜 쥔 사내는 아줌마를 미친 듯이 찌르기 시작했다. ‘놓아. 이년아! 제발 좀! 제발 좀!’ 정신없이 칼질을 하던 사내가 정신이 들었다. 아줌마는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다리는 붙잡고 있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제서야 비릿한 피 냄새가 사내의 코 끝을 찔렀다. 사내는 내달리기 시작했다. 무조건 뛰었다. ‘꿈이야, 이건 꿈이야, 아. 딱 한 번만 하고 그만하려고 한 건데. 배가 고파서 밥 먹을 돈만 생기면 그만 하려고 했는데.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꿈일거야, 악몽일거야’ 그 날의 악몽이 떠오른 사내는 진저리를 쳤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억지로 억지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9. 만남

‘아줌마, 그 아줌마..., 덤비지만 않았어도. 놓아주기만 했어도...’ 사내는 고개를 흔들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지난 한 달 동안 거의 술로 살았다. 술에 취해 있지 않고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내가 나쁜 짓을 좀 했어도 사람을 죽이다니. 아니야 그 아줌마 안 죽었을거야. 안 죽었을거야.’ 숙인 고개를 흔들다 머리를 든 사내 앞에는 어느새 한 남자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서 있었다. 움찔 놀란 사내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등 뒤에서 또 다른 남자가 자신을 응시하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사내는 꼼짝할 수 없었다. 그저 땅을 내려다보고 그 자리에 붙어 버렸다. 이윽고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이제 짐을 내려 놓으셔야죠.” 말없이 서 있던 사내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한 달 여 간의 힘들었던 싸움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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