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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Jul 05. 2019

김밥

사랑을 말다.


학교 다닐 때 소풍날이면 엄니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부엌에서 탕탕거렸다. 넓적한 후라이팬에 기름이 둘러지고 달걀물이 부어지면 '치이익~ 쏴아~'하는 파도 소리가 났다. 경쾌한 행진곡 같은 서막이 끝나면 엄니는 다시 부엌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 철푸덕 앉아 커다란 쟁반에 달걀지단과 쏘세지, 시금치, 단무지, 오이, 홍당무 등을 쌓으시고 양푼에 고슬고슬 잘 지어진 밥을 들기름과 깨를 넣고 주걱으로 썩썩 비빈 다음 나무 도마 위에 김발을 깔고 까만 김을 얹고 밥을 넓게 펴 발랐다. 그리고는 쟁반에 쌓인 속들을 하나하나 올리시고는 김발로 꾹꾹 눌러가며 동그랗게 김밥을 말았다. 나는 그저 옆에 앉아 쏘세지와 달걀지단을 손으로 집어 먹다가 '김밥 쌀 거 모자라니까 이제 그만 먹어라'는 엄니 말을 듣고야 물러 났다.


까맣고 길쭉한 동그란 김밥이 다 쌓아 올려지면 다시 도마 위로 한 줄씩 내려와 썽둥썽둥 예쁘게 한 입 크기로 잘렸다. 잘린 김밥 덩이들은 알록달록 예쁜 동그란 무지개 같았다. 엄니는 무지개 한쪽에 노란 달걀 옷을 입혀서 마지막으로 후라이팬에 다시 한번 부쳐내셨다. 그래서 엄니가 만들어 주신 내 김밥은 언제나 더 고소하고 특별해서 친구 녀석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그렇게 한쪽에 노란 외투를 걸친 동그란 무지개 김밥이 또 동그란 노란 놋쇠 찬합에 차곡차곡 담기면 그때서야 엄니는 시장통으로 장사를 하러 나가셨다.


새벽 일찍부터 깡시장에 가서 과일을 받아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했던 엄니는 아들이 소풍 가는 날에는 고단한 몸을 누일 새도 없이 더 일찍 일어나 김밥을 만드셨다. 굳은살이 가득한 까만 손으로 꾹꾹 눌러 말은 김밥에는 그래서 엄니의 사랑이 같이 버무려졌다. 그리고 엄니의 눈물과 헌신과 인내와 고달픔과 기쁨과 염려와 기대와 소망과 삶이 송두리째 사랑 안에 묻혀 꾹꾹 눌러졌다.


예쁘고 맛있는 잘려진 엄니의 꿈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그렇게 나는 나의 꿈을 키울 수 있었고 엄니의 삶을 꼭꼭 씹어 삼키며 나는 튼튼하게 자랄 수 있었다. 주말에 본가에 가면 순덕 씨에게 김밥 싸 달라고 해야지.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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