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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Sep 16. 2019

떡 광주리

잡아 먹히거나 혹은 잡아먹거나


생각보다 무겁다. 두 손으로 단단히 붙든 광주리에는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미끄덩한 떡이 한가득이다. 버선코를 닮은 날랜 바람떡 안에는 달짝지근한 팥앙금이 가득 들었다. 동글동글 꿀떡은 달달함이 넘쳐 올랐다. 알록달록 찰진 냄새를 퍼뜨리며 먹음직한 떡들이 가지런히 예쁘게 줄을 섰다. 널찍한 공원 산책로 한 구석에 다다른 순덕 씨는 저린 팔에 힘을 쓰며 커다란 떡 광주리를 '으쌰'하며 바닥에 내려놓는다.


송글송글 맺힌 땀을 떨어내며 '떡 사세요'라고 외치는데 미처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입 안에서만 맴맴 돈다.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한 끝에 겨우 가느다랗게 '떡 사세...'가 채 나오기도 전에 걸쭉한 욕설이 귀를 때린다.


"아, 이 아줌마가 미쳤나? 씨발 누가 맘대로 여기서 떡 장사를 해. 빨리 안 꺼져, 썅놈의 여편네가 확 다 뒤집어엎기 전에 빨리 꺼져, 씨발"


저 앞에서 풀빵을 파는 아저씨가 어느새 순덕 씨의 떡 광주리 앞을 막아섰다. 그 옆에서 떡을 팔던 아줌마도 금세 옆에 서더니 욕을 해대며 거든다.


"야 이년아, 누가 너보고 여기서 떡 팔래? 내가 저기서 장사하는 게 안 보여, 눈깔이 없냐? 이년아? 빨리 확 걷어가지고 꺼져. 망할 년아"


떡 광주리를 이고 지고 여기까지 밀려오면서 몇 번 당했던 터라 어차피 각오는 했었지만 이렇게 다짜고짜 욕을 하며 패악질을 해댈 줄은 미처 몰랐다. 놀라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순덕 씨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 여기서도 밀리면 안 된다. 돈을 벌어야 한다. 이렇게 밀리기만 하면 돈을 벌 수가 없다.'


포대기에 싸여 순덕 씨 등에 업혀 있던 아가가 큰 소리에 놀라 '와앙' 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배 곯리면 안 되지, 뱃속에서도 잘 먹지 못해서 비실비실 태어난 내 새끼, 이제라도 잘 먹여야지'


정신이 퍼뜩 든 순덕 씨는 서러움과 미안함이 북받쳐 내 새끼를 굶기려고 막아선 그들에게 악다구니를 쏟아낸다.


"뭐여, 이 년놈들은, 야 이것들아 여기가 늬들 땅이여?, 늬들이 전세 냈어? 난 오늘부터 여기서 장사할 거니까 싫으면 늬들이 딴 데로 가든지, 늬들이 뭔데 가라 마라야? 이 씨발 년놈들아, 차라리 나를 죽여라, 개 같은 종자들아. 이 씨발 것들아.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이 개썅년놈들"


순덕 씨는 깜짝 놀랐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겼을까. 어디서 이런 욕을 배워서 하고 있을까. 살짝 떨렸던 마음은 온 데 간데없고 가슴이 벌렁거리며 목소리가 커진다. 정말 이것들을 한 방에 보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악에 받쳐 소리 지르는 순덕 씨의 기세에 텃세를 부리던 장사치들이 잠시 주춤거리다가 이내 다시 받아치며 맞선다. 하나라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들과 같이 좀 먹고살자고 하는 자의 가난하고 지난한 삶의 서러움과 힘겨움이 욕망과 함께 한바탕 뒤엉켜 한참을 메아리친다.


순덕 씨는 그렇게 세상과 맞서는 법을 배워갔다. 그렇게 세상과 싸움을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동네 머스마들도 꼼짝 못 하던 왈가닥이긴 했지만 순진한 시골 처녀를 목소리 큰 욕쟁이 순덕 씨로 만든 건 역설적이게도 사랑이었다. 내 새끼 배불리 게 먹이려는 사랑, 내 새끼 잘 키우려는 사랑, 군대를 보내 놓고 사흘 밤낮을 울었던 금쪽같은 내 새끼를 향한 사랑.


때로는 욕심도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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