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Genome)! 그래 문제는 바로 이 놈이야. 게놈이 뇌의 대부분을 장악했어. 뇌를 믿지 말아야 해. 뇌라는 놈은 아주 영악해서 철저히 유전자의 지시를 따르고 있어. 뇌는 게놈의 지시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분명해. 나를 아무런 생각도 없는 아바타로 보고 있는 게 분명해.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 도 뇌가 만들어 준 페이크야. 뇌가 알려주는 정보는 달콤한 허상일 뿐.
뇌의 통제에서 벗어나야 해. 유전자를 통해 길러진 동물적 본능과 교육을 통해 길러진 사회적 본능에서 벗어나야 해. 나의 굴레를 벗어나 이성과 본능 뒤에 감춰진 나를 찾아야 해. 내 자유 의지는 번번이 이놈 때문에 무산되곤 했어.
뇌가 심장을 지배하고 있어. 지금의 심장은 차갑게 식은 채 영혼 없이 움직이고 있어.
두근거림, 설렘, 환희, 열정. 삶의 이유 들 이 사라져 버렸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늙어버린 거야!
놈은 오로지 생존과 번식에만 관심이 있어. 생물학적으로 우월한 유전자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분명해. 더 이상의 투자는 낭비라고 생각하겠지. 마치 마무리 패전 투수처럼 대충 용도 폐기를 꾀하는 거야.
하지만 넌 잘못 판단했어. 나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고 자유의지는 아바타를 거부해. 평생 돼지처럼 식탐만 쫒다 담배 연기처럼 사라질 수는 없어. 자유 의지는 아이언맨처럼 아크 원자로를 가동해 차갑게 식어가는 심장을 태양처럼 뜨겁게 타오르게 할 거야.
게놈의 버릇을 들여야 해! 본능이라는 미명아래 뇌를 더 이상 농락하게 둘 순 없어.
식탐을 없애야 해. 맛의 달콤한 유혹에 속지 말아야 해. 본능에 역행하는 내 의지의 단호함을 보여주어야 해. 겨우 먹거리 따위에 굴복할 순 없잖아.
유전자 따위가 내 운명을 결정짓지는 못한다! 내 존재의 이유가 종족 번식을 통한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쿠팡맨 일 수는 없다.
그들에게 분명한 경고를 보낸다. 37조 개 세포를 거느리며 매일 천 억 개의 세포를 생산하는 나는 그들의 신이다. 그들의 예기를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어리석고 무능한 신이지만 그들의 의지를 위해 내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나의 의지를 위해서 존재해야만 한다.
늦은 여름 치맥이 생각나는 밤. 촐촐한 배를 부여잡고 쓸데없이 과도한 상상력을 동원해 식욕을 억제해 본다. 그러나 유전자 또한 그리 만만하지 않다. 쉽게 물러 서지 않는다. 슬며시 라면을 대안으로 협상을 시도한다.
‘라면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긴긴 여름밤 잠은 오지 않고 밤새 뒤척거리다 새벽녘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