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나'와 만나는 법
문명이 나날이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인생을 헛되게 살았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젊은 친구들에게 까지 자신의 인생을 낙담하는 짙은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죠. 왜 그들은 인생의 따뜻한 봄을 만나보기도 전에 우울한 결론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는 걸까요?
가장 헛된 삶이란 끊임없이 자기 의심에 사로잡히는 삶이 아닐까요. 그리고 고립된 내면의 공간에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 자기 의심의 메시지를 매일같이 곱씹고 있는 삶이죠. 나아가 세상이 저토록 혐오스럽지만 그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한의 무기력함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더 비참한 것은 나만 이런 무기력함 속에 있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분홍빛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럴까?” 하는 자책이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습니다.
여기 같은 고민을 하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눈 앞 푸른 초원에서 풀밭 사이로 뛰어다니고 있는 토끼가 그 주인공이죠. 그 옆 작은 연못에는 오리가 떠있고 나뭇가지 위에는 잠꾸러기 올빼미가 보이네요. 어느 한가로운 오후 숲 속 동물학교의 풍경. 첫 수업은 헤엄치기였습니다. 수영장에 가자마자 고약한 소독약 냄새가 났고 토끼는 눈앞이 어질어질했습니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죠.
창백해진 토끼에게 선생님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다음은 나무 오르기 나무가 크지 않아 거의 모든 동물들이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끼는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나무에서 떨어져 크게 다칠 뻔했습니다. 높이뛰기는 그럭저럭 다른 친구들과 비슷하게 흉내는 냈지만 날기 시간에는 하얗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토끼에게 심리검사를 한 다음 심리적인 공포를 줄이는 단계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저 열심히 노력만 하면 독수리처럼 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을 믿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토끼는 끝내 날 수도 헤엄칠 수도 없었습니다.
“난 정말 할 줄 아는 게 없구나.” 토끼는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토끼를 힘들게 하는 동물학교는 초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의 큰 기대 속에서 끙끙거리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팍팍한 평가를 해주고 있지요.
“야, 넌 할 줄 아는 게 도대체 뭐니?”라고 자신을 다그치면서 말이죠. 믿을만한 통계에 따르면 신년 초에 갖는 새해의 결심의 80%에 달하는 항목이 매년 똑같다고 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고치겠다고 매년 결심하는 사람들, 우리는 약점을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셈입니다. 약점을 고치면 성공한다는 편견은 생각보다 뿌리 깊게 우리를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윌리엄 포크너의 사례에서 우리는 그 주장의 증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둘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입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포크너의 [우화], [자동차], [도둑] 두 작가 모두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동시에 거머쥔 거장이며, 세계문학사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명작들을 남겼습니다.
토끼 역시도 달리기라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단연 돋보이는 학생이었을 것입니다. 단숨에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바람처럼 돌아오는 모습에 다른 친구들이 박수를 보내주었을 겁니다. 토끼는 기쁨에 넘쳤고 자신이 탁월해질 수 있는 분야에 눈을 떴겠지요.
그럼에도 우리에겐 방향이 필요합니다. 그 방향은 “나는 나의 어떤 면을 믿고 어디를 향해 걸어 나가야 할까?”라는 중요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이 때로 지치고 때로 비참할 때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한결같이 응시해야 할 My way는 과연 어느 쪽일까요?
노력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
연습을 거듭하면 완벽해진다
성공할 때까지 도전하라
라는 말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