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에 대학교 1학년으로 복학한 썰
25살에 퇴사를 결정한건 옳은 선택이었을까? 퇴사를 결정하고 재정비 하는 시간의 필요함을 느꼈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학벌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았다. 그것도 모르냐 할 수 있다. 그랬다.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박한 아이였다. 나는 명동에서 신발을 팔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원활히 신발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다. 무슨 소리냐 할 수 있는데 사실이다. 학년 인플레 현상 때문일까? 한국은 심각한 학력 인플레이션에 빠져있다. 신발 판매 사원도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다. 물론 졸업장이 반디시 필요하지는 않았다. 단지 승진은 없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정사원으로 전환이 안 된다. 나는 이 사실을 시간이 한참이 지나고 나서여 알게 되었다.
세상이 어떤 판국으로 돌아가는지 모르던 순박한 꼬마 아이는 변화를 결심한다. 변화의 이유는 단순했다. 졸업장이 없으면 먹고 살기 힘들구나 라는걸 알게 되었다. 종이 한 장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녔길래 너도 나도 필요하다고 하는 걸까? 어렸을 적 어른들이 대학 졸업장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포기했다. 왜냐고? 다들 나와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들 실의에 빠져있었다. 성인은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선생님을 잃는다. 지금처럼 유튜브가 활발했던 시기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 스스로가 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야만 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당신들이 살았던 시절과 현재는 너무나 다른 환경이기 때문에...... 부모님도 부모님은 처음인지라...... 어떤 현명한 해안을 제시 해줄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대학에 다녀야 하는 게 맞는 걸까? 다시 가면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데 그때면 반 육십에 가까운 나이. 맞는 걸까? 졸업장이 의미가 있는 게 사실 일가? 끊임없는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돌아갈 보금자리는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선택의 폭이 단순해질 수 있었다. 한 학기 다녀둔 학교가 있었다. 만약 휴학 처리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 퇴사를 결심하지 못 했얼 것이다. 나 휴학처리는 잘했겠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불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왜냐면 내가 다니던 학교는 행정처리가 좋지 않은 학교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도 들은적 있다. 우리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어떤 학교에서 행정처리가 잘 못되어 학교를 다시 다녀야하는 웃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급한 마음에 학교에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들린다. 긴장이 됐다. 수화기 너머로 000님 휴학처리는 이미 만료되어서 퇴학처리되었습니다 라는 불행한 이야기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다행히 나의 휴학은 건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단지 이번 학기가 마지막 유예기간이라 했다. 유예기간을 준 학교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다른 의심을 했다. 휴학을 4년이나 받아준다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학교 돈이 필요한 건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네 복학 가능합니다 라는 목소리가 네 우리 학교는 너에 통장의 잔고에만 관심이 있습니다라고 들리는 듯했다. 뭐 이찌 되었던 돌아 갈 수 있어서 다향이었다. 나는 하루빨리 복학하여 학교에 발전에 이바지하기로 결심하였다.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를 알렸을 때 주변 사람들은 울상이었다. 왜냐고? 나는 일을 잘했기 때문이다. 신발 판매 에에스였다.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너무 내 자랑 많이하면 밉상이 되어 보일지 모르니까.
학교로 돌아왔다.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사실 옆에 한 명이 있다. 같은 처지에 살아있는 화석. 이 친구 내가 꼬드겨서 복학시켰다. 전부터 몇 번을 함께 복학할 것을 권유했지만 계속해서 튕겼다. 목소리로를 한 껏 깔아 심각성을 표현해봤다. 졸업장의 필요성에 대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먹히지 않았다. 삼고초려를 해가며 친구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수화기 너머로 못을 박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와 함께 학교로 돌아가실 생각이 없으신지요. 소신과 함께라면 즐거운 환상적인 대학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끝내 승낙을 받았다. 내가 그 친구를 데리고 돌아가려 했던 이유는 하나다. 혼자 가기 두려웠기 때문. 혼자서는 다시 공부를 할 자신이 없었다. 그 친구가 내 글을 읽는다면 당장 나의 멱살을 잡을지도 모른다. 다행인 건 그 친구는 내 글을 죽었다 깨어나도 읽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내 글이 책으로 출간되고 '너와 있었던 일들을 책에 좀 가미를 해봤어'라고 말하며 책을 선물을 해도, 절대 읽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평생을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살포시 적어둔다. (친구야 고마워 니 덕에 멋진 글이 한 편 나왔어 저번에 술 마실때 너 대학나온거 후회 안 한다고 했지? 그럼 괜찮은걸로 알고 있을게)
25살에 복한 한 우리 둘 "우리 잘한 선택일까?" 라는 질문을 되뇌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익숙했지만 이제는 낯설 어진 풍경이 눈앞에 들어왔을 때도 말이다. "지금이라도 시작하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이제는 무를 수 없는 생각을 매 술자리에서 나불거렸다. 주황 불빛이 가득 찬 술집은 우리 둘의 걱정과 불안에 농도를 진하게 만들었다. 술은 목 구녕으로 술술 넘어가고 등에 지고 왔던 고민은 슬슬 더 커지기 시작한다. 어쩌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정 허들은 넘어야 하기 때문에 방도가 없었다. 그래 우리는 아주 작은 허들 하나 넘기 위해 4년을 투자해야만 했다. 짠! 그게 한국 사회의 규칙이니까! 다시 짠! 술잔을 부딪쳐본다. 무모한 도전은 시작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