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꿈입니다만?
작가가 됐습니다.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쳐 장편 소설 한 편을 출간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전시입니다. 도서관 한 쪽 공간을 마련하여, 책을 전시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출판사에서 정식 출간한 책이 아니기에 작가라고 불려도 되나 싶었어요. 저는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자칭 작가인 거죠. 나도 이제 작가예요. 그러니까 명함 하나 파도 괜찮겠죠? 이름 뒤에 작가 호칭이 달린 명함을 만들었습니다. 이름 뒤에 적힌 작가 호칭이 눈이 부실정도로 빛이 나네요. 종이가 해질 때까지 호칭을 매만져요. 너무 매만져서 광이 나기 시작했어요. 누군가는 그러다 찢어지겠다는 흉을 보네요. 걱정 안 해요 500장 인쇄했거든요.
책을 쓰는게 꿈이었어요.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에세이를 쓰려고 했는데 에세이 라는 그릇은 나를 품기 힘들다고 했어요. 하는 수 없이 소설에게 부탁했어요. 소설을 쉽게 본건 아니에요. 내 생각을 가상의 인물에 입을 빌려 표현하면, 풍부하고 깊은 음색이 만들어 지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다 쓰고 나니 이제야 살겠다 싶네요. 기진맥진이에요. 몸에 기력이 하나 없을 정도예요. 말라비틀어진 닭강정에서 내 모습이 보여요. 완전히 쪼그라 들어버렸어요. 김영하 작가는 강연 중에 이런 말을 했어요. 글을 쓰는 직업이 여러 업종 중 수명이 가장 짧다고 말이에요. 이번 경험을 통해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얼마나 힘들던지 말로 다 표현 못 합니다. 체중계 올라서면 살이 빠졌을 거예요. 머릿속에 있던 그 많은 생각을 종이 위로 밀어내는 작업이 열량 소모가 컸거든요. 이런 단기 다이어트는 세상에 없을 거예요. 단기 다이어트가 필요하신 분은 책을 쓰세요. 꼭 이요.
성급하게 명함을 인쇄했나 싶기도 했어요. 정식 출간 작가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명함은 나만 보기로 했어요. 당분간은 말이에요. 왜 이렇게 성급했냐고 질문을 하는 사람이 머릿속 상상 장치를 통해 불쑥 튀어나왔어요. 저는 청문회에서 질문 공세를 받는 정치인이 된 듯 답변을 준비합니다. 그게 말이죠. 그래야 더 열심히 글을 쓸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 어떠한 동기부여 영상보다 효력이 강력하네요. 이건 비밀인데요. 저 다작이 꿈입니다. 심지어 다작을 통해 엄청난 인세를 받고 티비에 출현하는 꿈도 있어요. 웃기지 않나요? 출판도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햇병아리가 벌써 김칫국 마시는 거 말이에요. 이번 작가 호칭을 단 명함을 인쇄한 건 제게 큰 의미가 있었어요. 지금 했던 행동이 다작을 위한 첫 발걸음으로 기억될 듯합니다. 먼 훗날 오늘을 기억하며, 나 그때 명함 인쇄 하길 정망 잘했어 라고 회상하고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지금 제 기분이 말이죠. 상당히 묘하네요.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여정이 기대가 되기도 ,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기대반 걱장반. 양념반 후라이드반 같은 적절한 조합이랄까요? 그래서 마냥 즐겁지도 마냥 걱정되지도 않는 멜랑 꼴리한 느낌이 들어요. 책 쓰기 전에는 책 한 권을 쓰면 두 권세 권은 껌이겠다 싶었는데, 써보고 나니 아니었어요. 작가 호칭의 중압감이 상당하다는 걸 체감해요. 한 권 써 쓰니 두 번째는 까마득해요. 가끔 소설가들이 책을 출간한 후 긴 공백기를 가지는 이유가 이해되네요. 수명 도둑 글쓰기……….
포부 하나 외치려고합니다. 글에 끝마무리를 식상한 멘트로 마무리 할거에요. 작가라는 호칭에 떳떳하기 위해 더 읽고 더 쓸 거예요. 아직은 누군가에게 저 작가예요 라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언젠가는 때빼고 광낸 명함을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거예요. 홍조 띤 미소와 함께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