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베었다. 수세미에 퐁퐁을 묻혀 그릇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그러다 손끝에서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릇들 사이로 담금질 되어 있던 손을 황급히 빼어 쳐다봤다. 이미 늦었다. 손은 이미 흔건한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릇을 들춰보니 칼이 있었다. 조심했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를 하기 에는 이미 늦었다.
인생도 피로 흥건하게 샤워를 맞친 손의 입장과 겉더라. 불행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손이 칼에 배임을 당할때 예상하지 못 한 것처럼, 인생도 불행에게 예고도 없이 베임을 당할 때가 있다. 이럴때면 불행에 예고편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하다못해 복선이라도....... 인생도 클리쉐 가득한 영화같았으면. 그랬더라면 내가 손에 배었을 때 덜 당황 했을 텐데 그랬더라면 불행이라는 감정에 '후회' 가 덜 묻어 있을텐데
왜 불행이 생겨야 후회와 반성을 하기 시작하는 걸까? 간사한 인간 같으니라고! 나에 다친 손을보며 못다한 후회와 반성을 해본다. 고무장갑이라도 꼈어야 했는데 아니, 설거지를 안 해야 했는데
주인을 잘 못 만난 피를흘리는 검지 손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검지 손아 조금만 기다려 진정시키며 잠시만 기다려봐. 피흘리는 검지손을 달래며 주인은 허둥지둥 휴지를 찾는다. 일단은 지혈부터 하려고 휴지를 집어들어 손을 감쌌다. 급한 불은 껐구나 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쉰다.
상상력이 풍부한 덜렁이 주인은 불행에 상상의 불씨를 짚힌다. 혹시 파상풍에 걸리는 건 아니겠지? 혹시 손이 많이 찢어져서 병원에서 꿰매야 하는 건 아니겠지? 몇 바늘이나 꿰매야 하는걸까? 마취하면 아프겠지? 119 번호 뭐였더라? 상상은 모터를 달아 이곳 저곳으로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손이 베이는 아픔보다 견디기 힘든 건 상상과 버무려진 고통이 아닐까?
서랍을 뒤진다. 검지 손아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내가 소독도 해주고 마데카솔도 발라줄게. 검지 손은 무사했다. 다행히도 내가 상상으로 쏘아올린 불씨들은 현실까지 번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오늘 찾아온 불행의 불씨는 빠르게 진화되었다. 다음에 찾아올 불행도 빠르게 진화되면 좋으련만
혹여나 찾아올 불행의 불씨를 잠재워줄 소화기 몇대는 구비해둬야겠다
아니 그건 그렇고
손이 베이자 마자 컴퓨터를 키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키보드에 닿지 않게 조심히 글을 쓰는 나는 변태임에 틀림이 업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