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면 미끄러지고, 느리면 돌이 튄다.
나미비아는 아프리카 남쪽 끝의 남아공에 서쪽에 붙은 나라이다. 대서양과도 접하고 있다. 콜라병을 들고 있는 부시맨의 고향이기도 한데, 꽃보다 청춘에 한 번 나와서 유명해지지 않았나 싶다. 구글맵을 들여다보면 죄다 모래다. 그래서 면적은 우리나라의 8배이지만 인구는 250만밖에 안된다.
더워서 일기를 쓸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아서였을까 유례없이 기록이 미천하다. 킬리만자로에서 정신과체력을 가불 한 죄로 그 이후의 여행지에서는 그 당시의 감동과 흥분에 비해 남긴 바가 몹시도 적다. 더불어 나의 허접한 언어로 남길 기록이 총천연색 아프리카의 특별함을 훼손하는 것 같아서 쉽게 써지지도 않았다. 긴 변명이었지만 조금 지쳤던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마음으로 여행을 한다면 매 순간 뭘 뽑아내야 하니 부담스러울까 아니면 관찰력이 늘어날까? 궁금하니 꼭 다시 가보고 싶다. 내 해마에는 얼만큼의 기억이 남아있으려나, 누룽지처럼 박박 긁어보려고 한다.
우선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나미비아에 대한 1번 이미지는 희한하게도 ‘소중하게 퍼그를 안고 가던 할아버지’였다. 여행을 마치고 수도인 빈트후크로 돌아가는 길은 야생말, 양, 오릭스 같은 동물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 더 황홀한 자연이었는데,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신 할아버지께서 샤넬백처럼 퍼그를 꼭 껴안고 계셨다. 차를 세워서 그 강아지를 구경하고서야 다시 출발했다. 그때가 진짜 좋았고 아프리카에 대해 생각하면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서 신기할 정도였다.
다시 봐도 귀엽다.
유럽이나 아시아에 비해 아프리카 대륙은 편하게 여행하려는 마음은 고이 접어두고 시작해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나미비아는 1인 배낭여행자에게는 정말 꽝이었다.
혼자 타이어를 바꿔 낄 수 있는 수준의 능력자라면 모를까? 혹은 돈이 많아서 애초에 트럭킹이나 프라이빗 투어를 신청한다면 또 모를까? 돈도 없고 능력치도 딸리는 나 같은 사람은 파리가 날개를 비비듯 여기저기 비비고 다니며 일정에 맞추어 일행을 꾸려야 했다. 나미비아의 황량하고 또 황량한 walvis bay 공항에 내려서 스와콥문트 백패커스에 도착할 때까지 나의 계획은 ‘0’ 개였다. 백패커스에서 여행을 마무리할 수도 있겠군? 비행기표를 날릴 순 없으니 “께세라세라”를 불렀다. 나미비아에도 성수기라는 게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내가 간 때는 아니었는지 약간 유령도시였다. 오랜 기간 듄 45로 향하는 여행을 함께할 동행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문의를 넣었으나 진전이 없었다. 그럼에도 속 편하게 샌드보딩도 하고 해변에서 와인도 한 잔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왜냐하면 내가 딱 서른이 되는 새해였기 때문이다. 혼자 온 나는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12월 31일은 3.2.1도 못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면하였으나 새해만은 희망차게 보내고 싶어서 모래사막 위에서 일출을 보았고, 또 용기를 내어 스카이다이빙도 신청했다. 철가루가 많아 붉은빛을 띠는 나미브 사막은 대서양에 접하고 있는데 사막의 끝에 바다가 시작되는 황홀한 광경을 하늘에서 볼 수 있다는 광고에 혹하여 거금을 투자해서 경비행기에 올랐다. 스카이다이빙을 또 해볼 순 있겠지만, 사막 반, 바다 반인 곳에서는 못할 테니 또 거금을 들여서 동영상도 신청해 본다. 경비행기가 고도를 높여갈 때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문이 열리니 아예 뇌가 멈춰버렸다. 그래도 혼자 뛰는 게 아니고 내 인생에 백 도는 없으니 우는소리 한 번 안 하고 용감하게 자유낙하 하였다. 눈 딱 감 고 낙 하아아 하아아
9.8의 중력가속도를 느낀 건 단 몇 초였을까? 순식간에 낙하산이 펴지고 위로 끌려 올라갔다. 하나님이 내 구레나룻을 당기는 듯했다. 낙하산이 펴지고서야 눈을 뜰 수 있었는데, 파란 건 바다인지 하늘인지 둘 중 하나일 거고 노란 건 사막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목숨줄이 실에 달려있으니 천천히 감탄할 여유가 없었다. 그것도 잠시 백인 강사 아저씨가 나를 즐겁게 해 주려고 낙하산을 줄을 당겨서 90도 좌측, 90도 우측으로 계속 바꾸셨는데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지구가 팽팽 도는 것 같았다. 당장에 내리고 싶었다. 낙하산에는 액셀이 없는 것 같았다. 영원 같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땅을 딛었고 한참을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땅촌년
그러는 사이 기적처럼 동행을 구했다. 일정이 맞춰지고 렌터카 대여만 남았는데, 당장 내일 간다고 하니 이 도시 어디에도 4*4가 없었다. 그나마 있는 곳은 도요타 코롤라만 남아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륜구동 아니면 안 된댔는데? 여기 비수기가 아니었구나? 다들 빌려서 이미 떠났구나? 저거로도 되는 건지 검색을 좀 해보려는데 나보다 몇 살 어렸던 호기로운 젊은이가 조심스럽게 그냥 코롤라를 빌려서 가자고 제안했다. 나도 어차피 보험을 드니까 잘하면 별일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판을 깔아놓자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동행하기로 하였다. 그는 세상만사 불만이 가득한 jean(좌앙-이라고 발음해야 한다)이라는 프랑스인이었는데, 이런저런 불만을 실컷 토로하고 마지막엔 꼭 just in my opinion이라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귀여운 사람이었다. 동물애호가인 그는 로드트립 중에 숨어있는 수많은 동물을 찾아주기도 하였다. 나도 좋아하는데 그는 찾는 능력이 출중하여서 내내 고마웠다.
4*4가 아닌 죄로 오프로드를 먼지 날리며 멋지게 달리진 못하고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첫날의 목적지는 세스림 캠핑장이었다. 내 생에 자갈들이 이렇게 무서워 보이는 날이 또 올까? 빨리 달리면 미끄러지고 천천히 달리면 돌이 미친 듯이 튄다. 그래도 주변에 차가 없어서 좀 이상하다 싶으면 내려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귀여운 코롤라를 달랬다.
실은 달랜다고 될 일이 아니라 기도가 필요했다. 길이 워낙 제멋대로라 딱 한번 차가 360도로 몇 번인지도 모르게 빙빙 회전했다. 주변에 차가 없어서 망정이지 큰 일 날뻔했다. 운전자는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고 교대를 한 후에 한동안 뒷좌석에서 요양했다.
중간에 솔리테어라는 남아공 수입품을 파는 애플파이 맛집에 들러서 당을 충전하고, 세스림캐년이라는 언젠가 물이 흘렀던 흙동굴도 구경하며 남들이 하는 건 다 하면서 캠핑장에 도착했다. 정말이지 감사한 일이고 모두들 사륜구동을 빌리길 바란다. 안전 도착을 ㅈ죽하하며 엘림듄에서 일몰을 보고, 모닝빵에 고추참치를 집어넣어서 저녁을 먹었다. 맥주는 천국의 맛이었다. 달이 예쁘게 떠올랐다.
다음날 아침, 새벽 5시에 출발하여 그 유명한 듄 45에 일출을 보러 갔다. 부유하게 트럭킹 하는 팀에서 뜨거운 물을 빌려서 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해 온 g7커피를 타마셨다. 너무 행복했다. 아래에서 보면 다른 모래 언덕들과 다를 바 없는 언덕인데 올라갈 수 있는 모래언덕이라 유명해졌다고 한다. 커피도 한 잔 했겠다, 카페인의 힘으로 천천히 올라가면 되겠다-했는데, 헬스장에서 inclined모드로 러닝을 하는데 계속 발이 푹푹 빠진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사람들이 왜 듄 45에 일출을 보러 가는 줄 아는가? 일출이 숨 막히게 아름다워서? 아니다. 해가 떠버리고 나면 뜨거워서 죽는다. 해가 뜨기 전에 꼭짓점에 가있어야 한다. 새벽 5시가 이른 시간이 아니었다!
힘든 이야기부터 떠들었지만 막상 언덕에 앉아 해가 떠오르는 걸 보는 것은 뭉클했다. 사막에 누워있으면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던가, 사람이 개미처럼 많았음에도 고요했다. (실제로 우리의 동행인 좌앙은 시부야 같은 저 언덕엔 절대 안 간다며 밑에서 우릴 기다렸다.) 해가 뜬다- Sun rises-1 형식 완전 자동사의 대표 동사를 떠올리며 한 껏 작열하는 태양을 마주한다. 실은 해는 뜨지도, 지지도 않는다. 지구가 돌 뿐이라고 칼 세이건의 책에 나온다.
그럼에도 해가 뜨고 저문다는 표현은 쉽게 포기가 안된다. 서른 살인 내 인생은 뜨고 있는 중이겠지?
남자임에도 욕심이 많은 사진귀신과 동행한 덕에 타오르는 듄 45에서 예쁜 사진들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내려와서 데드블레이, 소서스블레이까지 구경하고 일정을 마쳤다. 더위에 타 죽은 나무들이 만들어 낸 장관.
캠핑장에서 더위에 한껏 늘어진 개처럼 타는 태양아래 찜질을 했다. 캠핑장 내의 수영장에서 더위를 식히고 다시 말리고를 반복하며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몸속에 빠진 수분을 맥주로 보충하고 기운을 내서 일몰을 보러 또 길을 떠났다. 오릭스 가족을 만나서 기뻤던 하루였다. 캠핑장비가 없었던 나는 차 뒷좌석에서 잤다. 여러모로 고마운 자동차.
코롤라와 함께한 세 번째 날, 나미비아 여행을 끝내는 날이다.
우리의 아기 자동차, 펑크 한 번 안 내고 무사히 빈트후크까지 도착했다. 마지막이 사무치게 아쉽도록 그 길은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돌아오는 길에 남회귀선을 지나쳤는데, 간판을 보며 공부를 한다. 견문이 넓어지는 여행이다. 무사히 여행을 마친 기념으로
오릭스+스프링복+얼룩말+악어+쿠두로 이루어진 야생동물 플래터 구이를 먹고 밤새 설사를 한 후에 빈트후크를 떠나 말라위로 복귀하였다.
얼마나 큰 새가 집을 지어놓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