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와 갱년기의 끝나지 않는 신경전
이제 중학생이 된 지 1년이 지나 곧 그 무섭다는 중학교 2학년에 접어들게 되는 딸.
어릴 때 그렇게 귀엽고 깜찍하던 아이는, 이제 성장을 거듭하더니 엄마의 키를 넘어서고 있고, 나름 가족 내에서 장신을 자랑하던 아빠의 키까지 넘보고 있다. 아빠 키가 크지 않다는 그런 얘기들은 듣고 싶지 않아 키 재기를 두려워하거나 억지로 바쁘다고 피하고 있지는 않다.
딸이 사춘기를 시작한지 꽤 된 것 같은데, 아직 1년 밖에 안지나다니 참 시간도 야속하다. 사춘기의 증상이 어떤지는 사춘기를 겪어본 나로서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경험했다고 잘 알 것 같으면, 중 2병에 대한 처방은 이미 인공지능을 통해 해결이 되었으리라 싶다.
거부하고 싶지만, 갱년기가 시작된 것 같다. 근데 갱년기의 흔한 증상을 찾아보지도 않고, 난 그냥 내가 갱년기라고 떠들고 다닌다. 딸이 나 사춘기니까 건들지 마라고 무언의 냄새를 풍기고 다니듯이 나도 갱년기임을 떳떳하고 당당하게 내세우고 다닌다. 그래야 뭔가 서로가 가진 무기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전장에 나가는 전사들처럼 서로를 경계하기도 하고, 인정하기로 할 것 같아서이다.
그 차갑고 음산한 새벽공기같던 사춘기 초입이 지나 이제는 중반기로 접어드는 것 같아 보인다. 그게 부딪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지만, 서로의 눈치를 보는, 아니 나 혼자만 눈치를 보는 일은 많아진다. 이런 경쟁관계와 대립관계를 없애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계획해야 할까 고민해 본 건 아니지만, 그냥 내가 좋아하듯이 가족들도 좋아할 것 같아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 여행은 그야말로 대성공적인 '하나의' 해결책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훨씬 더 좋았던 여행으로 서로의 관계들은 훨씬 더 예전과 같이 돈독해지고, 서로를 위해주는 가족관계를 되찾아갔다. 미지의 여행지로 떠나는 시작부터오는 설레임은, 서로를 견제하기 보다 서로에게 의지해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보고자 함이 드러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의 설레임과 여행을 떠나 하나씩 달성해 내는 미션들로 서로의 신뢰가 충만해진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을 통해 서로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하나씩 서로에게 의존하게 된다. 각자의 결정을 믿고 따라줌에 따라 서로에 대한 마음은 한없이 넓어지고, 빠르게 교감하기 시작한다.
단언컨데, 준비된 여행, 서로를 존중하는 여행만큼 서로가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드는 것은 없다. 가족의 추억을 또 한페이지 만들어나가면서 이제 점점 더 완성된 스토리가 되어간다. 이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다음 여행지에서 풀어내고, 그 이후에도 여행의 추억들은 하나씩 겹쳐 돌아온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동안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잊지 못해 시간만 나면 서로를 찾아 추억을 풀어내고, 깔깔거리면서 웃는 시간을 만든다. 서로가 없으면 허전할 정도로 한없이 서로를 찾게 되는 것도 예전보다 더하다. 그동안 일상의 피로로 쌓여왔던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은,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바라는 바가 많은데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골이었다.
좀 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한박자의 쉼을 가지고 서로를 바라봐주고, 상대가 얘기하는 것을 사랑스러운 얼굴로 받아들이다보면 그동안 쌓였던 오해와 부담은 모두 다 녹아버린다. 사춘기와 갱년기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잘 대할 준비가 되었는지가 더 중요하고, 그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딱 시기'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시기 임을 자랑하면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각자가 느끼는 각자의 피로함과 간절함에 대해 조금만 귀를 기울여 이해해 준다면, 사춘기와 갱년기 사이의 골은 조금씩 옅어질 것이란 확신이 든다. 처음 겪는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 태어나 처음 맞는 갱년기의 황당한 경험 앞에서 누구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고, 서투르지 않을 수 없다. 그 서투름을 서로 인정해 주는 것이 시작이며, 끝없는 자연스러움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갓 다녀온 여행만큼이나 소중한 가족의 관계를, 이제는 더 소중한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존중의 수위를 더 높이려 한다. 서로가 바라는 바를 조금 더 일찍 알아차리기 위해, 서로가 생각하는 바에 대해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배려해 보고자 한다.
사춘기도 처음, 갱년기도 처음인 서투른 자녀와 부모의 관계, 우리는 지금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