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무엇, 자신을 타자화해서 3인칭으로 써보기
살면서 이거다 싶은 책, 영화, 드라마, 음식 등을 만난다. 삶에 변화를 주었거나, 다시 읽고, 보고, 먹어도 여전히 좋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스한 위로와 기쁨이 되는 그런 무엇이 있다. 그럴 때 앞에 '인생'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긴 설명이 간단하게 압축이 된다. 인생책 인생영화 인생드라마 인생음식 등.
그녀가 '인생음식'을 만난 때는 29살 겨울이었다. 그녀는 말라깽이였다. 두 손으로 허리를 잡으면 손가락 끝이 닿을 정도였고, 거센 바람이 불면 붕 떠서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는데, 머리카락은 두껍고 새까맣고 숱이 많아서 만약 날아간다면 기우뚱, 다리부터 들려질 것 같아 위태로워 보이는 몸이었다.
그녀는 말라깽이로 있는 자신이 싫지 않았다. 아니 자랑스러웠다. 어릴 때 들은 "배부른 돼지가 아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돼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자신이 뿌듯했기 때문이다. 배고픔에서 오는 속쓰림은 그녀를 예민하게 만들어 턱과 눈꼬리를 날카롭게 했는데 그것은 특히 세미나나 토론을 할 때 빛을 발했다.
사실은 말라깽이의 진실은 정서적 고통이었다. 먹는 것을, 정확히는 '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턱뼈를 움직여 어금니 위에 올려놓은 음식물을 짓씹고 혀를 움직여 굴리고 다시 짓씹는 그런 반복적인 행위가 그녀는 힘이 들었다. 신체에서 오는 통증이 아니라 정서적 통증이었다. 마음 내밀한 그 무엇,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렇다고 상담사를 찾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렇게 씹지 않고 목으로 넘기는 음식을 먹으며 그럭저럭 지내었다.
29살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던 그 겨울에 그녀는 충무로의 회사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추위가 정신을 곤두서게 했다. 생각에 몰두하기 좋았다. 광화문에 이르렀을 때 바람이 너무 차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고 종로 즈음에 이르렀을 때에는 급격한 피로감을 느꼈으며 인사동으로 들어섰을 때는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무엇이든 따뜻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물을 몸에 넣어야 했지만 마땅한 식당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인사동을 빠져나와 삼청동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한옥의 어느 골목길 안쪽에 아담한 식당이 보였다. 00순대국
그녀는 순댓국을 먹는 순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왜 음식을 먹는지. 공복의 날카로움은 포만의 부드러운 여유로 바뀌면서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배부른 돼지도 좋구나. 이리하여, 순댓국이 그녀의 인생음식이 되었다는 이야기.
인생 음식, 인생 책, 인생 드라마, 인생 영화, 인생 여행 등 그것에 대해 쓰는 것은 쓰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비록 쓴 글이 실제로 인생에 끼친 영향에 많이 못 미칠지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자신을 타자화해서 3인칭으로 쓴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세우는 문장은 무엇인가?